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돈'은 기만이다

[리뷰] 카이타니 시노부의 새 연재작 <라이어 게임>

등록 2007.04.29 20:42수정 2007.04.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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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꽃은 투수의 탈삼진과 타자의 장쾌한 홈런이다. 하지만 카이타니 시노부는 만화 <원아웃>을 통해 야구의 또 다른 묘미, 혹은 야구에 숨은 치밀한 심리적 공방전을 그려나갔다.

도박야구판의 살아있는 전설 '토구치 토아'는 직구의 평균 시속이 불과 120km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상대팀 타자와 감독의 수를 완전히 읽어버리는 심리전의 도사로서, 그를 쫓아내려는 구단주의 갖은 계략에도 굴하지 않고, 상상을 초월하는 연봉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오 사다하루(왕정치)를 연상시키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지장(智張)도, 육상 선수 출신의 최고의 대주자도 그 앞에서는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그렇듯, <원아웃>에서 드러나는 카이타니 시노부의 장점은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인간의 심리 구석구석을 건드릴 줄 아는 날카로운 눈이다. 그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와 더불어, 다소 아쉬운 그림체를 극복하며 '이야기'의 매력을 앞세워 성공한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만 하다.

돈을 빼앗아 튀어라, <라이어 게임>

최근 3권이 발간된 <라이어 게임>
최근 3권이 발간된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 리브로
그의 신작 <라이어 게임>은, 그의 전매특허인 '심리적 공방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비슷한 소재와 구성으로 인기를 누린 다른 작품의 흔적도 발견된다는 것.

가는 곳마다 속아 넘기 바쁜 미련퉁이 소녀 '나오'는 우연히 상자를 열었다가, '상자를 열면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는' 라이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한 달 동안 상대방의 1억 엔을 빼앗아야만 하는 게임이다. 거짓말도, 사기도, 모두 허용된다. 속여서 빼앗아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분명히 아니다. 게다가 '나오'는 '가는 곳마다 속아 넘기 바쁜' 소녀가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오'의 첫 대전 상대로 중학생 시절의 은사로 설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게임은, 그리고 돈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냉정한 세상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오붓한 사이도 철저하게 갈라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전문용어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표현한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간 아버지의 '시원하다'는 말에 '속아넘어가' 데인 아들만이 하는 표현이 아닌 것이다.

돈과 욕망을 놓고 벌이는 심리적인 공방전, 그리고 '나오'를 돕는 천재적인 젊은 사기꾼 '아키야마'의 등장. '아키야마'의 이미지는 만화 <검은 사기>의 주인공으로서, 사기꾼 잡아먹는 사기꾼, 일명 '흑로'로 등장하는 '쿠로사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인간의 심리를 영악하게 활용하는 천부적인 재능과, 사기의 세계로 가게 된 '원한' 등, 젊은 사기꾼들에게서 느껴지는 모종의 공통점이 엿보인다.

<라이어 게임>은 '나오' 콤비와 선생님과의 1억엔 대결이 끝나면서, 새로운 대결 구도로 접어들었다. 1차전의 승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게임을 주최하는 '오너'가 집단적인 게임을 제의하는 것이다.

마니아들은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설정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서로 무너뜨리고 쓰러뜨리기 위해 벌이는 사기의 모든 것, 그리고 적나라한 합종연횡 등, 인간이 돈과 이득 앞에서 어디까지 머리를 짜내고 지독해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는 <라이어 게임>에 그렇듯 비슷한 설정이 등장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카이타니 시노부에게도 그만의 분명한 뚝심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더럽고 치사해질 수 있는지 확인한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 세상의 한구석은 분명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 사기꾼 '아키야마' 역의 마츠다 쇼타. <검은 사기>의 '쿠로사기'처럼, 그도 사기꾼이 된 어딘가 비슷할 법한 계기가 암시된다.
천재 사기꾼 '아키야마' 역의 마츠다 쇼타. <검은 사기>의 '쿠로사기'처럼, 그도 사기꾼이 된 어딘가 비슷할 법한 계기가 암시된다.후지TV
적나라한 심리학의 경연장 <라이어 게임>

선생님이 '나오'를 일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활용한 수단은 '믿음'이었다. 학창 시절,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나오'는 선생님을 무조건 믿은 것이다. 선생님은 이 '믿음'을 역이용해 자연스럽게 돈을 빼앗으면서, 나중에야 돼서야 본색을 밝힌다.

'아키야마'가 선생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활용한 인간의 심리적 측면은 '인지적 불협화'로 정리된다. <라이어 게임>은 그 개념에 대해 아주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주변의 반응에 따라 그 믿음이 흔들리거나 방황하게 되는 경우를 이야기한 용어라고 한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굳건한 믿음도 있지만,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의 판단까지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능이 있는 한, 인간은 자신의 이득과 편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장담할 수 없는 동물들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여기저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이기 때문에, 아니면 형제보다 더 가까운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간혹 상대방의 빚 보증을 서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철저한 배신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배신'을 저지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세상이 그렇게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면,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세상에는 범죄가 있으며, 그 안에는 탐욕과 변명이 있다. 게다가 인간은 스스로의 잘못을 지우기 위해 무의식까지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다. 변명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2차전은 22명의 1차전 승자들이 모여 '소수결'이라는 희안한 대결로 이뤄진다.
2차전은 22명의 1차전 승자들이 모여 '소수결'이라는 희안한 대결로 이뤄진다.후지TV
'일드족'의 관심을 얻고 있는 <라이어 게임>

<라이어 게임>은 현재 후지TV에서 2007년 2분기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 후지TV에서 4월 14일부터 매주 토요일 11시 10분에 방영되는 드라마 시리즈는 37분가량의 짧은 시간에 구성된 작품이지만, 질질 끄는 구석 없이 시원한 전개가 인상적이며, 주연 여배우 토다 에리카의 이미지에 맞춘 비주얼도 그럭저럭 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행본과 드라마 시리즈 모두, 2차전의 향방에 초점이 맞춰진 상황으로서, 오너는 '소수결'이라는 이름의 기막힌 게임을 제의했다.

<도박 묵시록 카이지>에서는 '가위 바위 보'를 기가 막히게 변형해 독자의 두뇌를 자극했는데, '소수 의견을 내는 사람이 이기는' 소수결 게임도 못지않은 흥미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어 게임'을 매개로 만난 두 남녀가, 그저 연애 모드로 나아갈 것인지, 협력과 라이벌 구도를 번갈아가며 구축하는 긴장 어린 관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도박 묵시록 카이지>나 <검은 사기> 못지않은, 인간 심리의 적나라함을 까발리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구나 우연한 계기로 '라이어'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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