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풍 "친위쿠데타? 난 전혀 모른다"
박철언 "판쓸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단독 발굴 - 청명계획 ②] 노태우정권 최고 책임자들 '말도 안 된다' 반발

등록 2007.04.25 17:47수정 2007.05.0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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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노태우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가 비상계엄에 대비해 '청명계획'을 수립하고 민주인사 923명에 대해 민간인 사찰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오마이뉴스>는 87년 6월 전 국민적 민주화 열기를 무위로 돌이키려 했던 군 당국의 터무니 없는 시도에 대해 4차례로 나눠 고발한다. <편집자주>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 조 전 사령관은 "청명계획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 조 전 사령관은 "청명계획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오마이뉴스 장윤선

"청명계획? 나는 전혀 모릅니다. 89년 내가 보안사령관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일이 진행될 리 있습니까."(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

"청명계획? 처음 들어봅니다. 여소야대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3김을 긴밀히 접촉할 때인데 판쓸이 계획은 상상하기 어렵죠."(박철언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


89년 4월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친위쿠데타 '청명계획'을 수립하고 국내 민주인사 923명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해온 것과 관련해, 당시 핵심 보직에 자리했던 관계자들은 모두 이 계획 자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은 하나회 멤버로 노태우 대통령의 직계라인으로 분류됐음에도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청명계획을 수립했을 리 만무하다고 밝혔다. 계엄령이 내려지면 보안사령관은 비상시국의 검찰총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조 전 사령관이 모르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격노했다.

현 국군기무사령부가 보관하는 자료 가운데 청명계획과 관련된 문건이 실존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는데 왜 자꾸 캐어묻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철언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도 청명계획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 전 정책보좌관은 "89년 4월은 정권 차원에서 여소야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치권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라면서 "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거대한 민중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스를 판쓸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설사 노태우 대통령이 보안사에서 기획한 청명계획으로 판쓸이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정책보좌관 모르게 일을 진행할 리 없다는 박 전 보좌관은 "보안사 내부에 페이퍼 작업을 좋아하는 일부 간부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기획은 대부분 휴지통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라고 일갈했다.

다음은 두 핵심 관계자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 "친위쿠데타? 터무니없는 허구다"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오마이뉴스 장윤선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 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은 지난 13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오마이뉴스>와 89년 4월에 추진된 친위쿠데타 계획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나회' 멤버로 군 내부에서는 노태우 대통령 직계라인으로 분류되는 조 전 사령관은 88년 12월 대통령선거 직후 노태우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보안사령관이다.

조 전 사령관은 "내가 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보안사령관"이라며 "노태우 대통령의 당시 공약이 군은 절대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지 모르냐"고 반문했다.

이어서 "나는 정보장교도 안 해본 특전사령부 작전 통"이라며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기용한 것은 12·12 사태와 5·17 비상계엄 등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깨끗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 전 사령관은 "군대에서 비상계엄이 발동되면 보안사령관은 비상시국의 검찰총장에 해당한다"며 "그런 내가 몰랐다면 터무니없는 허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조 전 사령관은 "89년 당시 양심선언이 유행병처럼 번져서 길목 차단효과를 노리고 자주 양심선언이 이뤄지는 기독교방송(CBS) 정문 앞에 보안사 요원들을 배치한 적은 있다"며 "보안사 직원들이 그때 당시 기독교방송 앞에서 24시간 경계체제를 갖춘 바 있다"고 털어놓았다.

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사건으로 직위해제 된 조 전 사령관은 당시 예하 장교들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윤석양 이병은 혁노맹사건(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으로 군대영창을 갔어야 하는 사람이었다"며 "김용성 당시 소령과 우종일 대령, 윤춘달 대위 3인방의 진급심사가 걸려 있어서 윤석양씨를 개인적 목적으로 활용하려고 데리고 있다가 말썽이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군 내부의 진급심사도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성과'가 있으면 플러스알파가 적용되기 때문에 당시 이 3인방이 윤석양 이병의 필력을 활용해 책을 한 권 내서 진급심사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은 "당시 실무책임을 맡았던 김용성 소령이 혁노맹사건으로 입건된 연루자들을 일괄 처리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3인방이 윤석양 이병을 영창에 보내지 않고 사사로운 목적으로 쓰면서 군 내부에 큰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조 전 사령관은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에 남아 3인방의 진급심사에 필요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 "그들이 나에게 허위보고를 했기 때문에 전혀 사실관계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명계획 당시 보안사의 최고책임자였던 조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을 준비하는 계획이 수립됐다면 사람들을 'TAKE CARE(돌보는)' 상황을 말하는 것 아니겠냐"며 "군복을 입고 국가체제를 보호하는 군인은 군사보안을 위해서라도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법"이라고 전했다.

조남풍 전 보안사령관은 육사 18기로 88년 12월 보안사령관에 취임한 뒤 90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문제로 직위해제 됐다가 교육사령관, 1군사령관을 지냈다. 또한 민주당 안보특보를 지냈으며 정몽준 캠프 등 한때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박철언 전 정책보좌관 "노태우 대통령 판쓸이 결심했다면 내가 검토했을 것"

박철언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친위쿠데타 청명계획을 수립하기에는 89년 당시 거스를 수 없는 민중의 흐름이 있었다"며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잘랐다.
박철언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친위쿠데타 청명계획을 수립하기에는 89년 당시 거스를 수 없는 민중의 흐름이 있었다"며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잘랐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청명계획? 처음 들어봅니다. 여소야대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3김을 긴밀히 접촉할 때인데 판쓸이 계획은 상상하기 어렵죠."

박철언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지난 1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정치상황을 설명하면서 "89년 4월은 민정당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빼앗겨 여소야대 상황이 됐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을 위해 백방으로 뛰던 때였다"며 "3김을 긴밀히 접촉해서 90년 '1·22 3당 통합'을 이뤄냈는데 판쓸이 계획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박 전 정책보좌관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86년 건국대사태와 87년 4·13 호헌조치(간접선거제 유지)로 여론이 들끓자 비상선진계획(일종의 비상계엄)을 세웠다가 거둬들인 적은 있"지만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청명계획을 세워 친위쿠데타를 기도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기획됐던 '비상선진계획'도 고도의 통치전술로 '심리전'을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지 정말로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정부 인사들에게 '판쓸이'한다고 겁을 줌으로써 극렬 반정부투쟁을 잠재우겠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박 전 정책보좌관은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당시 야권에서는 ▲80년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5공 부패 처단하라 등의 주장이 격렬하게 제기됐다"면서 "90년 1·22 3당 통합 전까지는 노태우 대통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혼란정국이었다"고 술회했다.

이어서 그는 "당시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내밀한 막전막후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모르던 보안사 일부 간부들이 자체 계획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보고했을지도 모른다"면서도 "만약 노태우 대통령이 판쓸이 방향을 결심했더라면 틀림없이 정책보좌관이었던 나에게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명계획 자체가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노태우 대통령이 검토해보라고 지시가 내려왔을 테지만 전혀 말이 없었기 때문에 '페이퍼'에 불과한 것 아닌가 싶다는 게 박 전 보좌관의 견해다.

그는 또 "보안사나 안기부 등 주요 간부들 가운데 나라가 걱정된다면서 어마어마한 내용의 페이퍼 작업을 해서 갖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휴지통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거대한 민중의 흐름이 있었고 당시에는 이 흐름을 비상계엄이나 쿠데타로 거스르기 어려운 '힘'이 분명히 있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박 전 보좌관은 노태우 대통령과 관련해 "꿈도 아픔도 국민과 함께 하시겠다는 게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사람 이론인데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다"라면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갈등할 때 '물태우'라는 별명까지 들으면서 교량역할을 했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철언 #조남풍 #친위쿠데타 #노태우 #하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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