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그림만이라도 돌려주시면 안되나요?

돈도 그림도 잃어버린 어느 구족화가의 안타까운 사연

등록 2007.04.20 16:10수정 2007.04.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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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장애인 날 서울시민 문화축제장 한 부스에서 구족 시연회를 벌이고 있는 이윤정 화가
2007 장애인 날 서울시민 문화축제장 한 부스에서 구족 시연회를 벌이고 있는 이윤정 화가정길현
20일 청계천광장에서 '2007 장애인 날 서울시민 문화축제'가 열렸다. 우천과 상관없이 청계천광장에 많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 한 쪽 부스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구족작가 이윤정씨가 초대받아 휠체어를 탄 채 장애인들을 위해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시연회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 해 8월 '1004릴레이 희망의 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8명의 주자가 동두천에서 제26회 전국 장애인체전이 열리는 울산까지 600km 구간을 마라톤으로 뛰는 행사였다. 첫 기착지인 서울 청계천에서 서울시민이 함께하는 축하 행사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구족화가 이윤정씨가 초대되어 '희망의 질주' 개인전을 열었다.

그날 행사에서 명함에 'OOO 일보' 회장이라 쓴 아무개 씨가 '자화상' 이라는 작품을 사면서 "그림이 너무 좋군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라고 격려해 행사 관계자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입금시켜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 더욱이 연락도 되지 않아 이씨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07년 4월 16일 필자가 그날 받았다는 명함에 써있는 주소로 사무실을 찾아가 보았지만 사무실은 이미 두 달 전부터 빈 상태였다고 한다. 휴대전화는 여러 달째 불통이다. 이 정체불명의 회장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사라진 000일보 회장님'

이윤정씨 뒤로 '희망의 질주' 개인 초대전에 마지막 전시되었던 자화상 <벗어나기>(유화 90.9 x 72.7Cm)가 보인다.
이윤정씨 뒤로 '희망의 질주' 개인 초대전에 마지막 전시되었던 자화상 <벗어나기>(유화 90.9 x 72.7Cm)가 보인다.정길현
이 작품은 1999년 이씨가 발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었다. 이씨는 하루 3~4 시간씩 전신 통증을 참으며 무려 8개월에 걸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씨는 선천성 1급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양팔과 오른발을 움직이지 못 하고 스스로 일어나 앉지도 못한다.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발의 엄지와 집게발가락뿐이다. 발가락으로 붓을 붙잡고 발을 뻗쳐 작업할 때는 그야말로 혼신을 쏟아 부어야 한다. 너무나 고통이 심해 한 시간 일하고 세 시간을 쉬어야 하는 고난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태어난다.

"윤정씨가 그날 자화상이 팔려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날따라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했던 윤정씨에게 큰 힘이 되어 모두 기뻐했는데….제발 그림만이라도 돌려받았으면 좋겠어요. '윤정씨 자화상 얼굴이 너무 예뻐서 금방 팔렸나 봐' 했더니 '농담이겠지만 고마워요 언니' 하면서 쑥스러운 미소를 짓던 윤정씨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될 것 같아 더 속이 상한다."


천사운동본부 서길정 간사의 말이다.

왼발의 엄지와 검지사이에 붓을잡아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가는 이윤정씨. 사진 속 작품은 <서연지>(2006 대한민국 장애인미술대전 특선작 116.7Cm x 90.9Cm))
왼발의 엄지와 검지사이에 붓을잡아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가는 이윤정씨. 사진 속 작품은 <서연지>(2006 대한민국 장애인미술대전 특선작 116.7Cm x 90.9Cm))정길현
이씨는 주변 사람들이 작품 값을 받지 못해 큰일이라며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큰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저 혼자 조금 배를 곯으면 될 일인데 너무 걱정들 안 하셨으면…"하며 애써 웃으며 농을 던진다.

계속 이어지는 이씨의 말이다.

"저는 언제가는 작품 값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것 가지고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회장님을 믿고 싶습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더 많은 밝은 사회이니까요."

'그래도 믿고 싶다'는 이씨의 말에 필자와 주변사람들이 숙연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입견을 버리고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행사장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해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장애인과 불우 이웃을 후원하는 (사)희망지킴이 천사운동본부의 서길정 간사 (왼쪽)
장애인과 불우 이웃을 후원하는 (사)희망지킴이 천사운동본부의 서길정 간사 (왼쪽)정길현
이씨는 세계구족작가협회(본부 리히텐슈타인 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회원으로 그의 출전 작품의 판권은 협회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을 팔면 구매자에게 소장 작품을 상업용으로 복제 판매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받아 협회에 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씨는 "작품 값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며 오로지 'OOO일보' 회장님에게서 이 서류에 사인을 받아 협회에 보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모쪼록 이씨의 믿음이 꼭 이루어져 그의 천사 같이 해맑은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는 따듯한 봄이 되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윤정씨는 선천성 1급 뇌성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왼쪽엄지발가락 하나로 타이핑하여 개인 홈페이지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 http://www.everyung.com/

독자님께서 방문하시어 많은 격려의 글을 남기어 주시면 이윤정씨에게 많은 힘이 될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윤정씨는 선천성 1급 뇌성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왼쪽엄지발가락 하나로 타이핑하여 개인 홈페이지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 http://www.everyung.com/

독자님께서 방문하시어 많은 격려의 글을 남기어 주시면 이윤정씨에게 많은 힘이 될것입니다.
#구족화가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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