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날 2월 농민 20여명이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직접 기른 무 등 농산물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기습시위를 벌였다.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미FTA에서 쌀은 지키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올 해 한국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쌀은 모두 27만톤이고, 이는 매년 증가하여 2014년에는 40만톤을 넘어선다. 문제는 일단 쌀 의무수입량이 한 번 늘어나면, 이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한국은 앞으로 4~5년 안에 쌀을 전면 개방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과 다시 관세율 철폐 협상을 벌어야 한다. 게다가 <농민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국내 쌀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했던 쌀빵과 찐쌀도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관세철폐 기간을 15년 혹은 10년을 두었다고 말하지 말라. 중요한 사실은 그 기간이 지나면 관세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점이다. 관세가 없어진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농업이 미국의 농업과의 경쟁에 전면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올해가 13년째 되는 해이다. 그 사이에 한국은 농산물 일반 관세율에 대해 평균 24%의 감축을 요구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의 관세철폐 기간의 의미는 관세율을 철저히, 100% 다 없애야 하는 기간이다. 보리·옥수수·감귤류·후지 사과·복숭아·감·고추·마늘·양파·참깨 등의 관세가 머지않아 완전 철폐된다. 이는 한국의 농업이 경험하지 못한, 근본적으로 다른 충격이다.
한·칠레FTA에서도 괜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게으른 자들이다. 한·칠레FTA의 농산물 양허표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자들이다.
쌀·보리·콩·옥수수·쇠고기·돼지고기(냉동 도체, 설육)·닭고기·감귤·오렌지 쥬스·감·사과·배 등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농산물을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DDA 협상 이후로 논의하기로 한 것이 바로 한·칠레FTA였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산 농산물 수입은 발효 전인 2003년의 약 5000만 달러에서, 벌써 작년에 1억500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향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갈 것이다.
미국에 대한 극단적 혜택... 우리는 뭘 챙겼나
우리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 부분은 미국에게 약속한 무관세 수입량(TRQ)이다. 한국은 한미FTA에서 미국에게 옥수수 등 여러 농산물의 무관세 수입량 쿼터를 부여하였다.
워낙 중요한 사항이니 글이 조금 길어지는 데 양해를 구하고 싶다. 무관세 쿼터의 맥락을 알아차리려면 WTO 규정을 살필 필요가 있다.
WTO 체제에서 농산물 수입국은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을 없애면서 높은 관세율(일반관세율)을 설정하였다. 그 대신 일정 수량만큼은 아주 낮은 관세율(저율관세율)로 수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은 옥수수(사료용 및 기타용)의 일반 관세율을 328%로 매겼다. 그 대신 연간 약 610만톤을 1.8~3%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겠다고 WTO에 약속하였다. 그러니까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두 개의 극단적 관세율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옥수수를 계속 사례로 들면 한국은 2004년을 기준으로 850만톤이 넘는 옥수수를 미국과 중국, 브라질 등에서 수입하였다. 이는 앞에서 본 WTO 약속 수량 610만톤을 약 220만톤이나 초과한 것이었다.
한국은 이 850만톤 전량을 전부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였다(수치는 서진교 대외경제정책 연구위원의 연구에서 재인용). 이 초과 수입 물량분은 한국이 WTO에 약속한 물량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한국은 이를 일반 고율 관세율 적용으로 자유로이 돌릴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미FTA를 읽자.
한미FTA에서 한국은 옥수수 관세를 7년에 걸쳐 폐지하기로 했다. 미국산 옥수수에 대한 일반관세율이 해마다 45% 포인트 정도 자동적으로 낮아진다. 반면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산 옥수수에는 여전히 328%의 일반관세율이 부과된다. 한중FTA가 없다면 7년 후에 미국산 옥수수는 무관세인 반면에, 중국산에는 328%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 얼마나 극단적 특혜인가?
한국은 현재 850만톤 전부를 저율관세율로 수입하고 있지 않냐고? 앞에서 보았지만, WTO 약속 수량 610만톤을 초과한 220만톤은 한국이 일반관세율로 처리할 수 있다. 필경 미국은 머지 않아 한국에게 이를 요구할 것이다.
만일 한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한국이 WTO 약속 수량을 초과하여 수입하는 옥수수 분량은 모두 미국이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328% 관세가 부과되는 중국산 옥수수는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는 미국산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을 왜곡시키는 FTA
누가 한미FTA를 자유무역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자유무역의 왜곡이다. WTO 다자주의 질서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세계 4위의 거대 농산물 식품 시장인 한국에서 미국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보장하는 인위적 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한미FTA로 미국 시장을 한국이 선점하였다고 하는가? 무슨 시장을 선점하였는가? 섬유? 미국으로부터 섬유 FTA 특혜 관세를 부과받는 나라는 이미 70개 나라가 넘는다. 선점이란 한국 농산물 식품 시장에서의 미국을 위한 단어일 수는 있어도 미국 섬유 시장에서의 한국을 위한 낱말일 수 없다.
미국은 이러한 특혜 구조에 덤으로, 7년간 모두 약 169만톤의 옥수수(기타용)를 무관세로 배분받았다. 이것이 앞에서 본 무관세 수입량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놓고 중국ㆍ캐나다ㆍ브라질ㆍ호주 등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이 무관세 수입량을 따낸 분야는 식용 콩·식용 감자·감자분·보리·전분·팥·고구마·오렌지 등이 더 있다.
이처럼 한국의 농산물ㆍ식품 시장에서 미국에게 극단적 특혜와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한미FTA이다. 이른바 농산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그러니까 미국농산물의 수입이 급증하여 국내 농업이 피해를 볼 경우 긴급 관세를 매기는 제도를 따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 제도는 이미 WTO 규정에서 보장된 제도이다.
필자는 중국 마늘을 대상으로 부과했던 이 조치를 중국과 이면 합의로 무력화시켰던 한국의 태도로 볼 때, 한국이 이를 미국을 대상으로 발동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만일 한미FTA가 발효된다면 호주ㆍ중국ㆍ유럽연합ㆍ브라질 등 한국의 농산물 식품 시장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농산물 수출국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우쭐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앞에는 고통스런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농업을 저가 시장에서부터 고가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킬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장기간 보장할 것인가? 필자는 지금의 겉모습과는 달리 한국의 지배세력이 후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