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유전자조작식품 수입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환경단체.오마이뉴스 권우성
만일 한국이 7년째 미루고 있는 카르타헤나 의정서를 비준하여, 위 법률이 기나긴 동면을 끝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국의 건강영향평가 및 환경영향평가('위해성 평가')에서 승인을 얻지 못한 미국산 유전자 변형 옥수수·콩·사료 수입이 금지된다. 미국이 한미FTA의 마지막 순간에 위의 양해서를 관철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양해서의 구체적 내용을 보기로 하자. 한국의 법령은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크게 시험 및 연구 용도로 수입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양분한다. 여기서 이른바 '식용ㆍ사료용ㆍ가공용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s-FFP)에 대한 영향평가라는 매우 민감하고도 중대한 문제가 있다.
예컨대 식용 용도로 유전자 변형 콩을 미국에서 수입할 경우, 콩의 100% 전량이 오로지 식용으로만 처리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한국의 자연에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로 인한 위험성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 콩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곧 토양 재배실험을 해서 그 위해성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이 2002년에 제정한 '유전자변형농산물의 환경위해성평가 심사지침'에는, 식용·사료용이라도 원형상태로 국내 환경에 방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환경위해성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다(제3조).
어려운 용어를 무릅쓰고 평가 기준을 소개하면, '토양 이화학성에 미치는 영향' '토양 또는 수계에서의 생존능력' '포자생성여부' '토양 유용미생물ㆍ주변 곤충ㆍ동식물에 미치는 영향' '식물병원균과의 유전물질 교환 가능성 여부' 등을 기준으로 위해성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한미FTA의 양해서는 바로 이러한 한국의 평가 기준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미국은 한국이 식용 사료용 가공용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이러한 '예정된 사용 용도에 관련되고 적합한(relative and appropriate to the intended use) 평가기준'에 따라 진행하도록 하였다(양해서 제1항).
이는 농림부 장관이 고시한 평가기준을 심대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이를 관철시켰을까? 한국에 수출되는 미국산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절대다수가 식용ㆍ사료용ㆍ가공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새로운 유전자 변형 작물이 출현하더라도, 이것이 기승인된 유전자변형작물의 '전통적인 교잡'에 의해 생산된 '후대교배종'일 경우, 그새 변형체로 인해서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과 건강에 새로운 과학적 위해성이 창출된다고(introduce) 믿을 만한 이유가 없으면 한국이 이 새 변형체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아예 할 수 없도록 하였다(제2항).
이 복잡한 합의의 실질적 의미는 미국에서 새로운 교잡 변형작물이 출현하더라도, 이유없이 위해성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가입한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의 원칙인 사전방지원칙을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협약은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이 결여되었다고 해서 생물다양성 보전 대책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였다.
그 밖에 심각한 조항들을 자세히 살필 여유는 없다. 예컨대 실제 유통단계에 적용되는 매우 중대한 표시제에서도, 한국의 법률과 규제가 미국이 예측할 수 있는(predictable) 것이어야 한다고 했는데(제3항), 이로써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져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의무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의 표시제에 사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근거가 만들어졌다.
식품·농업정책에 미국이 상시 개입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