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연
저희 동네에는 매일 아침 8시 20분이면 트럭에 채소를 가득 실은 채소장수가 옵니다. 도매시장에서 갓 떼어온 싱싱한 채소, 과일을 식당에 납품하기도 하고 나머지는 동네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분이지요.
대형마트에서 3개에 1740원 하는 오이를 4개에 1000원에 판매하고 '펄펄 살아있는' 대파 한 단도 1000원, 장바구니만큼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감자를 2천원에 판매합니다. 게다가 덤은 또 얼마나 인심좋게 많이 챙겨주는지, 오전 8시 40분경 딸아이 유치원 버스를 태워주고 돌아서면 어느새 몇몇 품목이 동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이 아저씨 덕분에(?) 매일 아침 주머니에 천원짜리 몇 장을 챙겨나가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모처럼 만난 싱싱한 제철 채소를 헐값에 살 기회를 놓치면 억울하니까요.
그래서 5일 아침 건져온 것이 쑥 한 봉지와 마였습니다. 쑥은 비닐봉지 가득 눌러담아 500원, 소화에 좋고 체력보강에도 좋은 대표적 알칼리식품인 마는 어른 팔뚝만 한 것 두 개가 3천원이었으니 이것도 참 저렴한 가격이죠?
나른하고 입맛없는 봄날 저녁, 향긋한 쑥향으로 미각을 돋우고 비타민을 보충하면서 단백질이 풍부한 쇠고기로 영양보충을 한다면 마침 좋을 것 같아 애탕국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끓여주신 그 맛은 왜 안 날까
애탕국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봄이면 늘 즐겨 잡수셨던 국이기도 합니다. 쑥과 쇠고기로 완자를 만들어 맑은 국물에 띄워 낸 봄맞이 대표격 국물요리라 할 수 있죠. 어머니의 애탕국은 쇠고기로 맑은장국을 내어 끓인 것이라 고소한 국물맛이 더했고, 제 것은 멸치다시마 육수를 내어 끓인 것이라 고소한 맛보다는 개운하고 시원한 쪽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어째 음식 맛이 옛날 같지 않다"란 것입니다. "참외도 그 옛날 우물에 담가먹었던 개구리참외가 더 달고 맛있었고, 동치미 국수도 전쟁 통에 말아먹었던 그것이 더 찡하고 시원했다", "요즘 과일이며 채소는 어쩐지 맛이 없다" 등의 말씀 말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배고프고 음식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그 때의 그 맛을 못 잊어 기분상 그냥 그러신 거다"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날 끓인 애탕국을 먹으면서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도 어머니가 하셨던 똑같은 말씀이 나오더라고요.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주셨던 그 맛이 아니네, 요즘 쑥은 향이 진하지 않아서 그런지…."
쑥도 쇠고기도 다른 양념도, 다 엄마가 쓰신 것과 다름없이 똑같이 사용했는데 도무지 어려서 먹었던 그 향긋한 애탕국 향과 맛이 안 나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식재료들이 예전과 달리 정말 맛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워낙 자극적인 양념과 조미료 등에 익숙해진 제 입맛이 '참맛'을 못 알아보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쑥 500원어치, 국 끓이고도 남았네... 버무릴까? 부칠까?
어찌 되었든 어려서 맛보았던 그 감동적인 맛과 향은 아니었지만 엷게나마 쑥 향기가 나는 봄국을 차려 놓으니 식탁에도 어느샌가 봄바람이 깃든 것 같았고, 딸아이가 "파란 만두(?)"라고 하며 열심히 먹는 모습에 보람도 느낄 수 있었어요.
오늘은 어제 만들고 남은 나머지 쑥을 가지고 또 다른 쑥 요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쑥버무리를 만들까? 아니면 쑥부침개? 혹은 쑥 오징어무침을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을 만들든, 오늘도 요리접시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리며 한참을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찾아내려 애쓰는 것이 과연 '쑥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추억의 향기'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