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미FTA 협상타결 발표 기자회견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를 비롯한 한미 양측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오마이뉴스 권우성
3. 한미FTA 협상을 '한국 군주제'와 '미국 의회제'의 대결로 보는 이유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의 통상시스템은 한마디로 '통상독재'이다. 그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통령 개인의 '고독한 결단'에 국민과 나라의 운명이 내몰려있는 사실상의 '군주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FTA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밟는다. 보통의 경우 초기에 산학연 공동연구를 비롯 관련 연구기관들의 연구가 축적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무시되었다. 또한 관련 법규로 규정하고 있는 공청회 개최 역시도 간단히 무시되었다. 협상을 하기도 전에 4대 선결조건이라는 굵직한 의제들에 대해 미리 합의했으면서도 정부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국제 통상 협정이란 필연적으로 국내 비교우위 산업은 경제적 이득을, 국내 비교열위 산업은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FTA에 해당하는 미국식 통상시스템은 법 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심지어 국회의원들조차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집권여당의 수장 역할을 했던 사람이 2명씩이나 단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겠는가. 또한 정부는 도무지 생각해도 '협상 전략'과는 관계가 없는 각 분야에 대한 영향평가, 효과분석 등에 대한 연구보고서마저도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만행'과 '독단'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미FTA 협상의 시작부터 타결의 그 순간까지 한국에는 오직 '군주'가 있었을 뿐이다.
4. 미국 협상력의 진짜 비결 - '통상절차법'의 존재
협상이 진행되는 내내 한국의 국민들은 '몸'을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었다. 정보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발언의 통로는 차단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국민들은 '몸'을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집회를 통해, 단식을 통해.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한미FTA 중단하라'라는 외마디 주장을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어떠했을까? 미국의 경우 부시 대통령이 전국축산업협회에서 설명을 갖고, 기타 협상 관계자들이 전미자동차협회를 비롯 관련 이익단체들, 협회, 전문가그룹과 수시로 정보를 교감하며 지속적인 '조율' 작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쇠고기 문제였을 것이다. 미국의 축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적으로 보장된 '발언'을 통해 정부와 긴밀한 정보교류와 지속적인 조율 작업을 했던 것이다.
한국의 국민들은 '몸'으로 말하는데, 왜 미국은 '제도'를 통해 말하는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핵심적으로 미국의 선진적인 통상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법에 의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군주제'를 제압한 '미국 의회제'의 핵심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통상협상의 권한이 의회에 있다. 이는 헌법적 규정이다. 이에 따라 통상협상은 의회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것이 바로 TPA(무역촉진권한)이며,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라는 기구는 바로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때 실무를 총괄하는 기구이다.
나아가 미국은 무역법의 규정에 의해 의회가 협정의 진행과정에 참여하고 행정부는 의회에 보고 및 협의 의무를 갖고 있다. 이때 발행되는 각종 보고서들이 연차보고서, 현황보고서, 총체적 영향평가 보고서 등이다. 또한 통상정책/협상과 관련하여 이해당사자 및 국민들로부터 자문, 의견 수렴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민간차원의 700여 자문위원 그룹과 26여개 자문회의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협상단은 '국내 정치적 견제'의 틀 내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당연히 이해당사자들을 포괄하여 '총체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협상전략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통상영향평가 등의 실시로 인해 경제적 이익/손해에 대한 분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에 의해 상대국가의 협상전략, 협정문 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 통상 분야에서 미국의 '강력한' 협상력은 단지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내정치적 견제>가 가능한 견고한 제도적 틀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참여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