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이스터 쇼'의 인기종목인 돼지달리기.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시드니의 인구는 400만 명을 약간 웃돈다. 그런데 100만 명 이상이 모이는 농민들의 축제가 있다. 시드니 시민 4명 중 1명꼴로 찾는 농민축제의 명칭은 '로열 이스터 쇼'다.
한국의 봄이 절정을 향해서 달려가는 4월, 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호주에서는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이다. 1년 내내 구슬땀을 흘린 농민들이 수고의 대가를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계절인 것.
농민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하루 동안이나마 농촌체험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1백만 명이 넘는 시드니 시민들이 이 축제를 찾는다. 로열 이스터 쇼는 호주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로부터 '지상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쇼는 없다'라는 극찬을 받는 농민축제다.
31일 로열 이스터 쇼를 준비하는 현장을 미리 찾아갔다. 행사는 4월5일 시작된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마무리에 여념이 없는 농민들의 모습은 예년에 비해 많이 침체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돼지 레이스' 연습장은 활기가 넘쳤다. 모래밭 트랙 위로 흰 돼지들이 '날쌘돌이'처럼 달음박질쳤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돼지는 돼지였다. 잘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콧구멍만 벌렁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 난간에 부딪쳐서 나뒹굴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허둥대는 놈도 있었다.
순위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달려가는 돼지들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훈련시키느라 애쓴 농민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면 그만이었다. "호주농민들 만세! 호주돼지도 만세다!"
'농축산의 나라'로 알려진 호주의 농촌은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호주-미국 FTA 영향으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도 여의치 않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0년만의 가뭄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
4일에 한 명 꼴로 자살농민이 발생하는 비극적인 현실이 호주농촌의 실상이다. 그나마 호주농민들은 외롭지 않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100만 명 이상의 시드니 시민들이 농민축제 현장을 찾기 때문이다.(시드니=윤여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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