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한 종류뿐인 중2 도덕교과서.윤근혁
집필 교수들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과서 집필자들은 어떤 근거로 이런 내용을 쓴 것일까. 그런데 집필자들은 자신들이 쓴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01년에 해당 단원을 쓴 박아무개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내가 그 내용을 넣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로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다른 공동 저자인 박아무개 교수(경성대)도 "내가 쓰지는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는 기자가 취재에 들어간 지난 22일에야 관련 사실을 파악하고 "직권수정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의 내용은 이미 지난 2004년 한 일간지에 '기고' 형태로 실리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 이후 사태파악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28일 "스페인 역사 전공 학자와 교과서 필진 등이 참여하는 도덕교과서 수정보완을 위한 협의회를 오는 30일 열어 진위 여부를 가릴 것"이라면서 "교과서 내용이 잘못된 것이 드러나면 올해부터라도 전국 학교에 교과서 보완 지도자료를 보내 수정해 가르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 신화중 도덕교사로서 일간지에 글을 써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누가 특정 대학, 특정 교수를 중심으로 뭉친 집필자들에게 한 나라를 이토록 왜곡할 권리를 주었느냐"면서 "학생들이 달달 외우는 교과서에서 이처럼 엉터리 내용이 버젓이 실리는 교과서 제작 시스템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 [취재후기] '오리발' 집필자들, 눈감은 교육부 | | | | 문제가 된 교과서의 내용을 쓴 집필 교수들의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이들은 "내가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잡아뗐다.
이들이 책을 쓴 때는 2001년. 몇 해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국정 교과서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한 교수에게 '지금 해당 도덕책을 갖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교수는 "내가 쓴 게 아니라 현직 교사들이 쓴 것 같다. 내가 지금 보니 내용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공휴일이 280일"이라거나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기 때문에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교과서 내용을 전해들은 스페인사 전공 학자들은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정말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맞냐, 스페인에 있는 동료학자에게 부끄러워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황보영조 교수)
교육인적자원부도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주무부서인 교육과정정책과는 사태 파악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부에선 내용에 대한 첫 문제제기가 있었던 지난 2004년 편수 담당자가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며 지금 근무하는 사람들은 상황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교육과정정책과가 맡고 있는 국정·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2296권이다. 한정된 편수관들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일일이 검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문제제기가 된 내용만큼은 조속히 실태 파악을 하고 처리했어야 하지 않을까.
전경련 경제교과서 제작 주무를 담당한 곳도 바로 이 교육과정정책과다. 이 부서가 지난 해 경제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학교 교과서를 고치기로 한 부분이 모두 362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미 드러난 잘못만 이만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를 달달 외며 공부해야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영 뒷맛이 씁쓸하다. / 윤근혁 기자 | | | |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실은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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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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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 280일에 나태로 후진국 전락" 중2 도덕교과서 '스페인' 내용 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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