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각층에서 박종철군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과 집회 등이 잇달았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동안 일체 정치, 사회적 현안에 침묵을 지키던 대한변호사협회도 19일, 강력한 성명을 채택, 발표했다. 같은 날, 개신교의 원로격인 김재준 목사와 함석헌 선생도 정권당국을 질타하면서 "국민 여러분 밖에 이 나라를 바로 잡을 힘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힘이 곧 우리의 힘이요, 그것을 바로 쓰는 데 우리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고 국민의 궐기를 호소하고 나섰다.
이러한 호소에 호응한다는 듯이 함석헌, 홍남순, 김영삼, 김대중 등 전국 각계대표 9782명으로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준비위원회 측은 2월 7일 범국민추도회를 갖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각계각층에서 성명과 호소가 뒤따르고, 기도회가 연이어 열렸다. 1월 26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열린 '박종철 군 추도 및 고문 근절을 위한 인권회복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강론을 통해 박종철 군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두환 정권을 통렬하게 질타했다.
"야훼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니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의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던져지고 있습니다. "너의 아들, 너의 제자, 너의 젊은이, 너의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니 "탁 하고 책상을 치자, 억 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릅니다", "수사관들의 의욕이 지나쳐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 까짓 것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국가를 위해 일하다 보면 실수로 희생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하고 잡아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2월 3일 한신대학교 교수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고, 서울대 교수 1백여 명은 2월 5일 밤 박종철 군에 대한 추도의사의 표시로 밤 9시까지 퇴근하지 않고 각자 연구실에 있다가 귀가했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대학, 재야,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일반 시민들까지 규탄과 저항의 길로 모여 들었다.
2월 7일 오후 2시 정각 명동성당에서 박종철의 나이와 같은 21번의 종이 울렸다. 범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의 행동지침에 따라 수백 대의 자동차가 경적을 울렸고, 수많은 시민들이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불렀다. 이날은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부산, 대전, 광주, 마산, 전주 등에서도 추도시위가 벌어졌고, 전국에서 연행된 사람만 768명이나 되었다. 이제 범국민적 규탄과 저항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으리만치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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