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당시 모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나에게 6월은 짝사랑이다. 떨리는 눈길로 맴돌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한 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청춘의 질풍노도 시기를 꿰뚫고 지나간 '민주'는 그렇게 언저리 짝사랑으로 나에게 남았다.
처음엔 사랑인 줄도 몰랐던 그 향기는, 암울했던 79년 재수생 시절에 다가왔다. 그때 나는 연일 계속되던 데모와 온 도시를 채워가던 최루탄 연기를 외면한 채 도서관에만 파묻혀있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억울했다.
침울하게 칼을 갈며 대학이란 문을 향해 달리던 10월의 어느 날, 아마 15일경이었으리라. '민주세상, 독재 타도를 위해 거리로 나가자. 언저리에서 분위기만 보고 스스로를 달래자.'
짝사랑은 그렇게 다가왔다.
맴돌다가 끝난 사랑, 그래도 마음 속에 있다
그날, 나는 나도 모르게 언저리를 떠나 한가운데서 세상의 한 젊은이가 되어 거리를 달렸다. 전경에게 쫓기고 외치며 달렸다. 그리고 도서관 마칠 시간에 최루탄에 젖은 온 몸을 툭툭 털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도시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부산을 자랑스럽게 만든 10·16이었다. 머릿속 가득한 흥분에 가슴 두근거리며 조심조심 언저리 투쟁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나도 몰래 달렸다.
온 도시에 위수령이 내리고 서슬퍼런 군인들이 밀어 닥치자 소심한 재수생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언지 용암같은 불길을 가둔 채. 그리고 대학을 갔다. 그리고 '서울의 봄'.
'민주'의 향기로 캠퍼스를 채워가던 '80학번'의 시작은 어리둥절함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자유와 방종, 무절제, 시도 때도 없이 캠퍼스를 질주하던 데모의 물결, 그 속의 당당함, 오만, 독선, 균형을 잃은 우쭐함, 그 우쭐함을 포장해줄 언더서클과 동아리 생활…. 하루하루가 그렇게 자유롭고 소중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깨춤 추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빛바랜 채 남아 있다.
그렇게 흔들리며 나의 학창시절은 지나갔다. 어렴풋이 '민주'의 언저리에서 '민주'의 냄새를 즐기며 학창시절은 건방지게 끝났다. 나는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건방진 착각에 빠진 채 차가운 현실에 내동이쳐졌다. 첫 직장, 첫 사회생활, 만족하지 못하던 내 자신의 초라함까지…. 87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