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이집트 문화의 후예였다.

<람세스>의 작가가 재창조해낸 <모차르트>

등록 2007.03.25 09:47수정 2007.03.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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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라는 인물에 관한 에피소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그의 죽음에 얽힌 에피소드일 것이다. 단순히 신체적인 병이었다는 설도 있고, 누군가 그의 영혼을 공포에 질리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설도 있다.(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신이 그의 육체를 빌어 현존했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천재 음악가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니 그의 죽음에 다양한 옷을 입혀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평범한 이도 세상을 뜨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물음표를 주기 마련인데 마련인데 하물며 신에 비유되었던 천재이겠는가.

<모차르트> 전 4권
<모차르트> 전 4권문학동네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모차르트의 죽음에 입혀준 옷은 이제까지의 어떤 의상보다도 화려하고 비밀스럽다.


...레퀴엠은 볼프강 역시 완성하고픈 작품이었다. 악보에 처음 음표 몇 개를 기입할 때부터, 신앙보다 지혜를 중시하는 메이슨 직급장의 모습 그대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힘을 실감케 해주는 ‘키리에’는 모차르트 자신의 예술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예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경우였다. 모차르트는 파괴적인 힘들 간의 무시무시한 충돌을 확인하는 음악으로 가사를 뒤덮음으로써 고유한 위령기도를 창조하고 있었다. 죽음이란 언제나 격한 파열이자 고통인 것. 하지만 정신의 빛은 그것마저 되돌려놓아 생의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신혼여행으로 이집트를 방문한 후 이집트 문화에 강하게 매료되어 평생을 이집트 학자와 소설가로 살아온 작가가 펴낸 야심작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일생을 이집트 문화와 연결시켜 그려낸 방대한 장편이다. 이야기는 이시스 여신의 신전에서 시작한다. 젊은 수도사 타모스가 정체불명의 폭도들에게 공격을 받고 피신하면서 세상에 빛을 밝혀줄 위대한 마법사를 찾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는 것. 그리고 유럽의 한 귀퉁이에서 보잘것없는 음악가 집안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야기는 수도사 타모스와 모차르트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이루며 전개되다가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되기 시작한다.

이집트는 기원전 342년 넥타티보 2세가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에게 패하면서 30대 왕을 마지막으로 몰락해버린다. 그 후부터 위대한 파라오의 왕국은 침략자와 점령군의 왕에게 지배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천 년 가까이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집트의 현자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사라져버릴 것을 예견하고는, 이드푸, 덴데라, 카움움부 혹은 필레 등지의 거대한 신전 석벽들을 문자로 가득 메웠고, 수많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작성했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상상력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 후 다시는 부흥하지 못했지만 이집트 문화는 몇 몇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고 이는 연금술사와 프리메이슨, 그리고 모차르트라는 희대의 천재에 의해 완성된다. 모차르트가 인류에게 선사해준 아름다운 음악들은 결국 이집트-연금술사-프리메이슨 순으로 이어지는 인류문화에 대한 사랑의 암호였던 것이다.


사실 이집트 문화에 천착하는 사람들이나 모차르트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서로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와 이집트의 연관성이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모차르트의 일생 전체를, 그리고 그의 음악 모두를 이집트 문화와 연계하여 절대적인 상징으로 부각시킨 적은 없었다. 또한 그의 죽음을 기독교와 왕정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암살로 그려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온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의문점이자 프리메이슨으로 상징되는 이집트 문화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이다. 모차르트라는 한 위대한 음악가의 삶을 통해 이집트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다채롭게 굴절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내 안에 있던 작은 세계가 순식간에 고대 어느 시점으로까지 확장되는 탁 트인 느낌을 받게 된다.


3권만 읽고 자야지 하다가 결국 4권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내가 죽었다. 어떻게 죽었고, 죽으면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침에 깨어난지 오 분도 안되어 모두 잊혀졌지만 죽는 순간 느꼈던 황홀감은 뇌리에 남아 주말 아침을 가득 채우고 있다.

죽기 직전, 내가 미처 발휘하지 못했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여한 없이 사랑했음을 절절히 깨달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구체적인 정경은 사라지고, 죽는 순간 뻐근하게 내 전신을 사로잡았던 황홀감의 잔상만 안타깝게 일상에 어른거리고 있다.

꿈속에서 모차르트가 되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이집트 여신임을 깨닫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었을까. 오랜만에 찾아온 꿈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색깔로 채운다. 이런 소설이 좋다. 나를 흔드는 책, 내 안의 무언가가 한없이 확장되는 느낌을 주는 책, 머나먼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주는 아련한 책.

람세스 - 전5권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김정란 옮김,
문학동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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