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의 중심 안도리와 둠벙안 갯벌김준
일본, 여수바다를 탐내다
1910년에 발행한 <조선산업지>에 따르면 일본은 1900년대 초 안도에 5가구 20명의 일본인 이주어촌을 건설했다. 그 규모는 울산의 방어진(135호)이나 거제 장승포(120호), 동래부 절영도(227호, 지금의 부산 영도, 이상 1910년대 지명) 등 부산과 경남지역의 이주어촌에 비하면 아주 작다. 안도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愛嬡縣 출신이었다. 이주어촌은 일제가 러일전쟁 전후 본국의 어촌과잉인구를 식민지 어업정책의 하나로 한국연안에 이주시킨 일본어민의 취락을 말한다.
작은 섬 안도에도 1919년 일본인이 다녔던 심상소학교가 지어졌으며, 이외에도 서고지에는 어판장이 세워지고, 이보다 앞서 안도에는 어업조합(마을회관 옆 자리)이 결성되었다. 우리 어업사에 '어업조합'의 등장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어민들에게 어업권을 가지고 어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지는 야마구치가 편찬한 한국에 관한 조사자료다. 이 자료의 2권에 수산업과 관련된 조사자료와 통계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국의 산업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자료에는 이주어촌은 39지역에 모두 1146호에 인구는 4820명이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22곳, 전남 5곳, 함북, 강원, 충남, 평북 각각 2곳, 함남, 전북, 경기, 황해, 평남, 평북 각 1곳이었다. 경남 울산, 동래, 창원, 용남, 거제 지역이며, 전라도 지역은 안도 외에 외나로도 죽정포(13호), 거문도(12호), 무안군 목포(17호) 그리고 전북 옥구의 경포와 군산 지역(21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