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사회를 사실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경험 하나] 별의별 사람들, 군대니까 만나본다
나는 대인관계가 좋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짬밥이 안될 때에는 개성 표출이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개성 역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초중고 시절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나며 비슷한 친구들과 사귀다가 대학에 들어와 아주 약간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군대에서는? 이건 그야말로 팔도 각지에서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모인다.
다리에 커다란 문신을 새긴 사람, 호스트바에서 일하다 온 사람, 전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 명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 개그맨 지망생, 이벤트 사회자…. 일생을 살며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위로 100명, 제대할 때 아래로 100명. 2년여의 시간 동안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군대에서는 만날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제대 후 연락을 끊고 살지만 2년간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에게서 들은 삶의 이야기와 개개인의 성격 등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후의 생활에 크고 작게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경험 둘] 여기도 아예 못 게길 곳은 아니구나
신기하게도 필자가 입대한 후 적당히 적응한 후 생활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기무대 에서 나로 추정되는 사병을 관심사병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제대할 무렵이 되어서야 소속중대의 행정보급관이 개인적으로 불러내 "네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저런 활동들 해서 군생활 잘 할까 많이 걱정했는데 별 문제없이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서 '내가 관심사병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후에 생각해 보니 내 신상에 대해 그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간부들이 상병시절에 있었던 병사-간부간 간담회 자리에서 필자에게 중대 대표로 발제문을 작성하고 직접 발제까지 지시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발제 내용은 "간부들이 사병들간의 관계에 간섭을 많이 하는데, 내가 보기엔 간부들 역시 사병들과 마찬가지 문제들이 많은 것 같다"는 식의, 어찌 보면 발칙한 내용이었다. 웬일인지 중대장님은 발제를 수락했고 대대장을 비롯해 전 중대장 및 사병과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제를 마친 후 토론까지는 아니었지만 대대장과 몇 마디 진지한 이야기도 나눴다.
필자의 발제가 무슨 엄청난 반향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군대가 그렇게 꽉 막히기만 한 조직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단지 지레 겁먹고 간부에게 지적도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경험 셋] 말도 안 되는 규칙, 직접 개혁해보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무생활에는 여러 원칙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그 내무실 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중대임에도 불구하고 내무실에 따라 규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흔히 고참이 되어서도 이등병 시절 경험한 불합리한 원칙들(일어나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양말 신을 때 엉덩이를 바닥에 대면 안 된다, 걸레를 짤 때에는 물방울이 단 한 방울도 짜지지 않을 때까지 짜야만 한다, 내무실 내에서는 편지 읽으면 안 된다 등)에 대해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나 여러 관행들을 없애는 것은 고참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병은 누구나 진급을 하고 누구나 고참이 되므로, 내무실 안에 그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기회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고 변화를 지시할 위치에 올라 전 내무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아주 개혁적인! 변화를 가져온 적이 있으며 이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우쭐한' 기억 중의 하나다.
죽은 시간으로 보내기엔 2년, 너무 아깝다
물론 이런 말 몇 마디 듣는다고 갑자기 군대가 마구 가고 싶어질 리 만무하겠지만(그래서도 곤란하고), 또한 군대를 꼭 가야만 한다고 종용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군생활이라면,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적었다. '2년 동안 죽었다 셈 치고 살다 나오자'는 생각을 가지고 군 생활을 한다면, 그 억압적인 생활에 자신의 몸도 생각도 물들고 말게 된다. 남게 되는 건 악이고, 면제된 자들에 대한 고까운 시선뿐이다.
어차피 군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다. 사회는 변하기 마련이며 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몫이며 권리다. 막상 군생활을 해보니 체질적으로 너무 맞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겠으나, 그게 아닌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과 권리를 찾아보자. 군생활이 아주 조금은 보람차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