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은 직장을 잡았어요!

귀국을 준비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7.03.22 08:29수정 2007.03.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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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야,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 네 취업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우리 식구는 물론 주변 친지들도 모두 축하하며 기뻐하였다.


돌이켜 보니 네가 처음 유학을 거론했을 때 아빠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외국에서 굳이 외롭고 힘들게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쉽고 편안(?)하게 사는 편인 아빠로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많은 경제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직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또, 유학 열풍에 눈덩이처럼 커지는 자녀유학비가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판에 우리집마저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만 같아 썩 내키지 않았었다.

생각을 바꾸어 미국행 결정을 내린 것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 한국의 취업 전망이 어두웠고 너의 간절한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아야, 그날 네 전화는 크게 울렸다. 반사적으로 엄마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덩달아 나의 잠도 달아났다. 00전자, 이태리 근무. 노심초사 최종 결정을 기다려 왔던 엄마인지라 어둑한 새벽인데도 나는 상기된 엄마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단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흐뭇한 기운을 즐기고 있단다. 네 엄마보다는 덜하겠지만. 자녀의 성장음(音)에 부모들은 이렇게 진한 울림을 받는가 보다. 그간 적은 생활비를 아껴 쓰며 성실히 노력한 네가 다시 한 번 자랑스럽구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근무지가 국내 아닌 유럽이라는 것이다. 또 다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다니. 너는 동생과 달리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미국에서 생활하느라 늘 소원했었는데, 예전에 아빠의 부모가 그러했듯, 또 다시 자식을 멀리 두고 안부를 걱정하는 부모의 처지가 되어 버렸구나.

살갑게 미운 정 고운 정을 품고 살려는 아빠를 닫힌 사람이라고 탓할지 모르겠네. 사실, 품안의 자식을 고집하는 건 시대에 뒤처지고 진취적이지 못하겠지. 그런데 요즘 아빠의 심정은 더 넓은 세계에서 지혜롭게 기개를 펴는 것도 자식들의 긍지이자 도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너의 여정에 '새옹지마'라는 글귀를 떠올려 본다. '인생살이에서 불행과 행복은 계속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가. 여기 숨어 있는 교훈은 행복할 때 더 조심하고 노력해서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여기 부산에서 일주일 후에 너를 만날 수 있겠네. 2년 반만에 귀국하는 너의 모습이 무척 보고 싶다. 거기 주변 정리는 거의 다 되었겠구나. 그동안의 살림살이들, 비품들을 챙기고 처분하느라 분주했겠네. 또 풋풋한 정을 나누던 사람들과 막상 헤어지려니 각별한 아쉬움도 남겠구나. 떠난 네 자리에 따사로운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

'내 딸이 좋은 직장을 잡았어요!'

이 말을 하기가 좀 조심스럽다. 직장 갖기가 힘든 주변 상황을 염두에 두니, 크게 소리 낼 일도 아닌 것 같다. 허물없는 사람들에게서만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 해운대에는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장산의 녹음이 해운대 바다를 물들이는 좋은 시절, 엄마와 함께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하자. 네가 멀리 미국서 먹고 싶어 했던 그 '춤추는 곰장어'를, 시끌벅적한 해운대 시장통 그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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