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제는 좀 잠에서 깨어나라

[하승창의 뉴욕리포트] 미국 사회 흔드는 '이라크전 전쟁중단' 목소리

등록 2007.03.23 11:29수정 2007.07.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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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시위 행렬.
끝이 보이지 않는 시위 행렬.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4년, 미국 전역에서는 전쟁 중단을 위한 즉각 철군에 대한 요구가 드세다. 부시가 전쟁을 시작할 때의 높은 지지는 이미 지난 중간선거에서 추락했지만 미 국민들은 철군 요구의 고삐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미국 하원은 지난 15일 내년 8월까지 철군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켜 버렸다. 본회의을 앞두고 부시가 거부권 행사를 말하고 있지만 그 경우에도 부시의 정치적 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미국민에게 가장 인기있는 진행자 중 한 사람인 케이티 커릭이 진행하는 CBS 저녁뉴스에서는 "이라크 전쟁 4년 동안 사망한 미군이 3203명"이라는 소식이 헤드라인 뉴스로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은 이런 미국민들의 요구를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부터 지금까지 미 전역에서는 철군을 요구하는 시위와 집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전쟁개시 4주년을 맞아서 열리는 종전 요구 시위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반전연합인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의 홈페이지 첫 화면만 해도 3월 16일부터 3월 20일까지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LA, 뉴욕, 시카고 등 계속되는 대도시 지역의 시위 일정을 전달하고 있다.

펜타곤 앞 광장을 가득 메운 미국 사람들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시위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시위대.
지난 주말에 워싱턴에 머물러 있었다. 조지타운 대학에 연수와 있는 후배 부부의 집에 머문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다. 전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 탓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워싱턴 시내로 들어가던 중 펜타곤을 지날 때 형형색색의 만장들이 길게 눈에 띄었다.


아, 반전 시위를 하는구나, 가보자.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 앞에서 시작된 시위대의 행렬이 펜타곤 앞으로 집결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펜타곤 앞 광장은 우리 여의도 광장처럼 넓다. 그 날(지난 17일)은 여의도처럼 바람도 심하게 불고 있었는데, 광장이 넓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찼다. 주로 워싱턴 주변 동부지역 주에서는 몰려든 모양이었다. 코네티컷 주에서 온 사람들의 깃발도 보였다. 2만여명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연단에는 워싱턴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시 탄핵(Impeach Bush)운동의 홈페이지 주소가 걸려 있다. 지난 중간선거 패배에도 부시가 태도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3만명 증파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며, 촘스키가 말한대로 미국민들은 더 많은 행동을 조직하기로 한 모양이다.

만만치 않은 열기를 느끼며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일요일인 다음날 있을 시위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 어르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유대인, 교회까지

펜타곤으로 몰려가는 시위대.
펜타곤으로 몰려가는 시위대.
'전쟁중단을 위한 뉴욕행진(NYC, march to end war)'와 반전평화연합이 주최한 시위에서는 오후 1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35번가에서 40번가에 이르는 거리를 메웠다. 행진이 시작되는 오후 2시엔 수만명의 사람들이 뉴욕 시내를 가득 채웠다.

한 무리의 자전거 대열이 행진 시작을 기다리는 시위대들을 죽 지나더니 그들을 선두로 하여 시위가 시작됐다. 40번가에 대기하고 있던 퇴역군인들이 자전거 대열의 뒤를 잇는 것을 시작으로 6번가 도로로 차례대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로 한쪽을 메우고 행진하는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40번가에서 57번가까지도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우리로 치면 광화문에서 종로 어디쯤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모 손잡고 나온 어린아이들, 고등학생들, 어르신들까지 있었다. 퇴역군인들도 눈에 띄었다. 혁명을 꿈꾸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부터 노동조합, 녹색당, 여성단체, 뉴욕시내의 여러 교회, 유대인 그룹과 교회까지 정말 참여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넓고 다양했다. 그만큼 이라크전 종전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를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시위대 중간 어디서 우리 80년대에 익숙했던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우리 승리하리리(We shall over come)'. 행진 내내 이 여성은 쉬지 않고 노래를 선창했다.

시위대 중간에 우리 걸개그림처럼 대형 플래카드가 보여서 들여다 보았다니 'US Troops out of Philippines(주필리핀 미군 철수하라)'라고 적혀있다. "필리핀계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일본계 사람들은 오끼나와 미군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는 구호를 들고 있었고, 어느 한인은 "이라크에서 한국군도 철군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최 단체는 시위 조직만 할 뿐, 대표 연설은 없었다

피켓을 든 시위대.
피켓을 든 시위대.
거리를 지나는 일부 차량도 경적을 울리며 호응하기도 하고 주변 상가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수많은 단체들이 자신들이 만든 유인물을 나누어 주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세계는 기다릴 수 없다(World can't wait)'라는 단체의 유인물을 나누어주던 힐러리는 이 단체의 회원인데, 지금 당장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오늘 일을 돕고 있단다.

탄핵반대운동 때 거리에 모여 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주어서 집회기금을 마렸했었는데, 이날 여기서도 반전평화연합 상근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은 빨간 색 모금통을 들고 후원금을 모으고 있었다. 나도 1달러 후원! 많이 모였을까?

57번가에서 돌아 나온 시위행렬은 3번가와 45번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행진을 멈추었다. 행진이 끝나는 지점에는 다시 각 조직들과 개인들이 마련한 잡지와 유인물, 시위용 태그와 셔츠 등이 시위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다들 끼리끼리 모여 토론하고 노래부르며 함께 행진해 온 것을 격려하는 것으로 시위는 마무리됐다.

시위를 조직한 반전평화연합의 누구도 대표로 나와서 연설하지 않았다. 시위를 조직하고 안내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계급,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뜻으로 외치고 있는데.

행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쫓아다니면서 부시의 이라크 종전 선언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의 이라크 철군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겪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어쩌면 부시가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더 이상 부시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는 미국민들의 각성과 자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래를 부르던 시위대열의 여성이 외쳤던 구호는 "깨어나라 미국이여(Wake Up America!)"였다.
#이라크 #미국 #철군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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