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대, 아침이슬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이렇게 묻는다면 십중의 팔구는 꽤나 난처해 할 것이다.
그 이슬은 아침의 것이며, 그 아침도 이슬이 햇살에 의하여 바스러지기 직전의 시간, 곧 새벽에 가까운 것일진대 이 삭막한 대도시에서 하루의 낮과 밤을 경쟁의 드라이브에 바쳐야 하는 일상의 쳇바퀴란 도대체 아침이슬 같은 서정의 무늬를 조금도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고쳐본다면, 만약 '그대, 아침이슬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라고 한다면, 아 뉘라서 이 질문에 대하여 한걸음 뒤로 물러서겠는가, 십중의 팔구는 이 아름다운 노래에 얽힌 저마다의 기억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쯤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해보기로 하자. '그대, 아침이슬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아차차, 아무래도 당신은 너무 빨리 눈을 떴다. 아니 눈을 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그대 아침이슬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작사ㆍ작곡의 이 노래 '아침이슬'은 수십 년의 한국 현대사를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갸륵한 상징이다. 통기타의 선율에 얹힌 나지막한 독백이든 관현악의 거대한 울림으로 넘실대는 찬연한 파노라마이든 상관없이 이 노래는 현대의 수십년 세월의 굽이굽이에서 늘 불려지고 들려졌던 '바로 그 노래'이다.
70년대 초반의 작품으로 요즘의 노래방이나 모임에서까지 30년이 넘도록 불리는 이 노래는, 아무래도 저 20년 전의 '6월, 그 거리'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게 울려퍼진 바 있다.
20년 전, 박종철이 있었고 이한열이 있었으며 그리하여 6월 항쟁이 있었는데, 그 역사적 기억들 속에 빠짐없이 '아침이슬'이 있었다. 그 무렵의 정치적 사회적 열망을 명동성당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렬히 외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격렬한 구호와 함성에 더하여 '아침이슬'을 부르고 또 불렀으니 그로부터 지금껏 이 노래는 그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매우 애틋하고 절실했던 기억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당신은 어디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가? 누구는 종로2가에서 청계천으로 빠지는 골목에서 최루탄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간신히 틀어막으면서도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또한 한사코 입을 벌렸을 것이다. 밤샘의 농성에 참여하였거나 혹은 그러지 못하여 자취방이나 술집의 구석에서 혼자 그저 웅얼거리듯 이 노래를 부르며 못내 착잡하였던 기억도 누군가에게는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동창 모임의 어색한 노래방에서, 동해의 넘실대는 파도 앞에서, 지리산의 능선 길에서, 그리고 실제로 어느 새벽 신성한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문득 마주친 아침이슬을 보며 당신은 틀림없이 '아침이슬'을 불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