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현대판 김삿갓이철영
김삿갓(난고 김병연 또는 김립)의 조부인 김익순은 1811년 홍경래의 난 당시 선천 부사로 재직중이었는데 반란군에 항복하였다 하여 삼족이 멸하는 대역죄를 받았다. 김삿갓은 불과 5살이었고 그는 집안의 종인 김성수의 등에 업혀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홍경래의 난이 진압되고 난 후에는 조부 김익순의 죄만을 묻고 나머지 가족들은 패족(천인)으로 사면 되었다. 이후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으나 아버지 김안근이 홧병으로 죽고 난 후, 그의 어머니는 주변의 멸시와 천대를 피해 자식들을 데리고 아무도 자신들을 알지 못하는 강원도 영월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내력을 숨긴 채 자식들의 교육에 전념하였고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김삿갓은 그의 나이 20세 되던 해 영월 도호부 동헌 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질긴 운명의 끈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영월 백일장에서 써야 했던 시제(詩題)는 ‘논 정가산 충절사 탄 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즉, 정가산의 충절을 논하고 하늘에 이른 김익순의 죄를 규탄하라였다.
그는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인 줄은 꿈에도 모른채 ‘이조의 세신인 김익순아 들어라 가산의 정공은 경대부(卿大夫)에 불과하나 나라에 충사(忠死)치 않았느냐…(후략)’ 며 18수의 시를 일필휘지로 써내려 갔다. 그러나 그의 집안 내력이 드러나 장원은 취소되었고 어머니는 그제서야 조부에 얽힌 가족사를 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