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낮과 밤의 경계의 돌산대교이승열
돌산대교를 넘은 것은 낮과 밤의 경계, 시나브로 푸른빛이 깊어지며 사물의 경계가 더욱 또렷해졌다가 어둠 속으로 묻히고 있던 순간이었다. 달궁까지 갔다가 폭설로 통제된 노고단을 넘지 못하고 남원, 구례로 돌았던 지체가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했다.
쪽빛 바다, 알싸한 겨울공기와 아우러진 일몰의 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빛을 내겐 표현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도, 모든 것을 초월한 그 푸른빛, 세월의 켜가 얼마만큼이나 쌓여야 그 빛을 이해하게 될까?
@BRI@어차피 늦어진 길, 조금씩 짙어져 가는 빛을 바라보느라 오랜 시간 돌산대교 아래 앉아있었다. 또렷했던 바다 너머로 영취산의 검은 선이 잠긴 순간 사람들의 집들이 더욱 또렷해졌다. 어둠이 삼킨 돌산도 끝 향일암까지의 길을 달빛이 채우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 땅과 바다의 경계에 향일암은 걸려 있었다. 그 밤 향일암에서 제일 먼저 나를 맞은 것은 달빛, 천지를 온통 은빛으로 채운 보름을 하루 앞둔 섣달 만월이다. 하얀 달빛에 흠집이라도 날새라 덥석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운 밤이었다.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진 요사채에 이르는 길은 온통 동백나무 숲이었다. 동백나무 그림자 아래로 이미 만개하기 시작한 동백이 툭, 툭 하고 쏟아지고 있다. 이 밤 향일암에 존재하는 것은 바닷소리, 바다를 가득 메운 달빛, 그 달빛에 농밀함이 더욱 진해지고 있는 동백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