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청룡도(왼쪽 사진)와 관우를 보위하고 있는 동자상.김성남
중국에서는 요즘도 관우를 그린 그림들이 시중에서 많이 판매되는데, 정월 초하루 춘절이 되면 이 관우 그림을 사서 벽에 붙여놓고 절하며 예를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을 살 때는 절대로 '사다(買)'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되고 '청하다(請)'라는 표현을 써야만 된다고 한다. 실수로 모르고 얼마에 샀다든가, 그림 한 장 사오라는 말을 했다가는 주변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게 된다. 관우의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니고, 청해서 집안으로 모셔온다는 뜻이다.
중국에는 수를 헤아릴 수없이 많은 관제묘가 세워졌으며, 해외에 화교들이 살고 있는 곳에도 관제묘들은 빠짐없이 설립되어있다. 그러나 중국에 많은 관제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변천 속에서 중국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많은 유적들이 보존되지 못하고 훼손되어왔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이러한 기복신앙의 상징물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베이징에도 현재 관제묘가 십여 곳에 이르지만, 모두 청나라 이후에 재건축 된 것들이어서, 명나라시기에 세워진 진정한 관제묘는 볼 수가 없다.
동묘는 가장 오래된 역사뿐만이 아니라 완전한 원형의 형태로 보존된 관제묘라고 할 수 있어 그 문화재적 가치는 상당히 귀중한 것이다. 즉 관우 숭배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동묘를 방문하여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동묘는 상당한 매력을 주는 역사유적지가 될 것이며, 세계 각처에 흩어져있는 화교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역사탐방 여행이 될 것이다.
동묘는 한중교류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이곳은 조선 말 갑신정변 시기, 조선에 출정했던 청나라 웬스카이(袁世凱) 군대의 병영지로도 이용되었으며, 고종황제가 일본군대를 피해 잠시 피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갑신정변, 청일전쟁 등 한국을 사이에 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곳을 의리의 화신이라 불리는 관우가 지키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들은 특별히 관우를 좋아한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서 관우만큼 오랜 세월 인기를 받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관우의 사당, 이곳 동묘가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볼 수 있는 유적지로 새로 태어날 수는 없을까? 동묘를 동북아의 역사 유적 관광지로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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