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D 시스템.Reuters
시계 바늘을 6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부시 행정부가 수교 직전까지 갔던 클린턴 행정부 때의 업적과 김대중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초강경 대북정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이를 되묻는 것은 오늘날 부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관심사는 단연 미사일방어체제(MD)였다. MD를 통해 적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하면서 선제공격 능력을 확보하고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며, 옛 시절의 라이벌이었던 러시아와 떠오르는 경쟁자인 중국에 대해 확고한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후원세력인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이윤도 보장해줄 수 있다.
부시가 '미사일 강대국'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아니라 적대 관계 강화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MD 구축을 위해 북한만큼 좋은 명분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위협론'의 부활은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공동의 위협' 인식을 환기시키면서 부시 행정부가 원하는 형태로 동맹을 재편하는데 유력한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북한위협론'을 앞세운 MD 구축과 동맹 재편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 봉쇄에 있음은 물론이다.
부시가 최근 대북정책을 수정한 데에는 이와 같은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이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6년간 부시 행정부는 북한위협을 근거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상당 부분 궤도에 올려놓았다.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한국과 일본에 배치했고, 이지스함에 MD 기능을 장착하는 것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부시의 외교안보정책에서 MD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다. 9.11 테러 및 이라크 수렁의 여파 때문이다. MD가 상당부분 진척되었고 그 비중이 줄었다면, MD를 위해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 역시 줄어들었다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미·미일 동맹 재편도 상당 부분 마무리되었다는 점도 북한위협론의 활용가치가 떨어진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 재편을 통해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항구적인 주둔 체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MD가 '구상' 단계에 있었다면 부시는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판단이 우선했다면, 부시는 북한에 대해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했을 것이다. MD와 동맹은 부시를 포함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작년 11월 럼스펠드의 퇴장이 큰 분수령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는 MD 구축과 한미·미일동맹 재편을 통해 중국을 봉쇄함으로써 미국 단일패권주의를 공고히 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 북핵 문제의 해결은 MD 구축이나 동맹 재편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럼스펠드의 퇴장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실용적인 대북정책 채택의 반대 세력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후임자인 로버트 게이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이라크'이다. 대북정책 결정에 개입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동기도 거의 없는 것이다.
MD와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 주목해야 할 이유
한반도는 분명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북일 관계가 정상화 문턱에 도달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까지 참아온 의문을 내놓게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마당에 MD와 한미·미일동맹이 왜 존재해야 하냐고….
이러한 질문의 예고편은 이미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및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MD를 배치하는 것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유럽의 MD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러시아를 달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는 없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동맹체제 및 MD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할 핵심적인 요소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군사 분야를 포함해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자체적으로 핵과 미사일 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1월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위성 파괴 실험을 했는데, 이는 미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MD 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또한 올해 국방비도 작년보다 약 18% 늘린다는 방침이다.
미일동맹과 중러 협력관계 사이의 신냉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 한미동맹 재편을 통해 한국도 미국 주도의 대중 봉쇄 동맹에 한발 걸쳐놓을 위기에 있다.
지난 역사가 잘 보여주듯,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그 피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냉전해체 못지않게 동북아 신냉전의 출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3월 9일자에 기고한 것을 보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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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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