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주선
"우리는 비혼 여성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미혼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 여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의 축복과 함께, 비혼으로 홀로 또 함께 잘 살겠노라고 신성하게 선언합니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주의 모임 언니네트워크에서는 낯선 행사를 준비 중이다. 최초의 '비혼식'이 그것이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로 정절과 순결을 맹세하는 결혼식과 달리 짙은 자주색의 비혼예복이 준비되어 있다. 비장한 '비혼 선언문', 비혼들의 자유발언대도 마련된다.
'비혼 여성 축제-비혼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10일 오후 3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다.
결혼식만 있나? 비혼식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 여성의 인생은 결혼과 함께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어린애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비혼 꽃이 피었습니다'를 준비하는 기획단의 밈(별칭·24)이 말한다.
"비혼식의 주제색으로 짙은 자주색을 선택한 데에는 이미 스스로 완성되고 성숙된 존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언니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자 역시 기획단에서 활동 중인 나비야(별칭·24)도 덧붙인다.
"짙은 자주색은 정열, 적극성, 도발, 그리고 자유로운 인상을 주지요."
그런데 왜 하필 '꽃'일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서는 노처녀라거나 팔릴 시기가 지났다거나 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꽃필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지요."
똑부러진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행사 당일 참가자에게는 화려한 코사지를 달아줄 예정이다.
비혼식을 올릴 참가자 10명이 예복을 입고 비혼 선언문을 낭독하면 주례사, 기념촬영, 피로연 등의 예식이 엄숙히 진행된다.
나이 지긋하고 권위 있는 어른을 모셔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신랑을 섬기라"는 주례사는? 물론 없다. 행사 당일에 참가한 비혼 여성 하객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건네 "잘 살아라"는 덕담을 듣는 시간이 비혼식의 주례사다.
비혼이라면 혼자 조용히 살지 뭘 떠들썩하게 사람들 불러다 잔치까지 하느냐고?
비혼식은 왜 비혼을 결심했으며, 어떻게 비혼으로 잘 살 건지 만인 앞에서 구체적으로 다짐하는 시간이다. 안그래도 가족과 직장이 '결혼' 위주로 경조사를 챙기고 휴가와 상여금을 지급해 억울한데 '결혼 제도'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축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현실은 냉혹... 곳곳에 존재하는 '비혼'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