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간 이해찬, 산파냐 옥동자냐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남북정상회담이 마침표, 그 후는?

등록 2007.03.08 10:02수정 2007.07.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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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권우성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대선을 겨냥한 '체급 올리기'(<조선일보>)라고 한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을 두고 나온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이 전 총리의 방북이 "남북문제 등 국가지도자들이 다루는 이슈들을 통해 대선주자의 입지를 만들어 가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가 방북 후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미국 의원들을 초청해 평화체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란 소식도 곁들였다.

<중앙일보>는 더 구체적이다. "총리 퇴임 이후 공개 활동을 피해왔던 이 전 총리가 이번 평양행으로 단숨에 관심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며 그의 발걸음에 범여권의 대선 전략, 즉 '충청+호남'이 깔려있다고 했다.

충남 청양 출신인 그가 전면에 나서면 지역을 움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충청을 잡으면 호남은 전략적 투표를 할 것이므로 그냥 따라올 것"이라는 김한길 의원의 주장도 나온 터다.

'내 일'하러 평양 갔다는 이해찬... <조선>·<중앙>의 해석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이 전 총리는 어제 평양으로 출발하면서 "내 일을 하러간다"고 했다. 남북경협이 그 일이라고 했다.

의아했다. 남북간에 엄연히 경협추진위가 있는데 이 전 총리가 "내 일"이라고 나서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의원외교를 하러 간다면서 경협을 운위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던 차에 두 신문이 정치적 분석을 내놨다. 흘려버릴 수가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역할을 한다면 이 전 총리의 '주가'는 상승할 것"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면 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중앙일보>의 분석은 "내 일"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가능성을 짚자. 그럼 "내 일"은 실현될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방북성과가 이 전 총리 스스로 말한대로 경협에 국한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더 이상 여당이 아니다. 원내 제2당의 일개 의원이 정부 단위에서 기획되고 집행돼야 할 경협을 논의하고 합의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실천력을 담보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이심전심 통하는 사이라고 하니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국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즉 '투명한 절차'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논란이 커진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이래도 문제는 발생한다.

청와대는 이 전 총리가 대통령 특사가 아니라고 했다. 이 전 총리도 대통령 친서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선을 그어버렸으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성과를 내도 공식발표할 수 없다. 발표하는 순간 또 다른 차원에서 '투명한 절차'가 시빗거리가 된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셈이 된다.

다시 꼬인다. 이 전 총리의 방북은 어정쩡하다. 무엇 하나 성과를 낼 수 있는, 성과가 있더라도 그것을 발표할 수 있는 방북이 아니다. 이 전 총리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렇다. 형식(의원 자격)의 족쇄가 너무 튼튼하다. 자칫하다간 이 전 총리가 "깊은 산속 옹달샘에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가는" 토끼가 되기 십상이다.

2·13 이후 초청장 보낸 북측, 왜?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고 단정은 하지 말자.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분석할 수도 있다.

시선을 이 전 총리에서 북한으로 돌리자.

북한이 이 전 총리에게 초청장을 보낸 시점은 2월 말, 그러니까 2·13합의가 있고 난 후다. 무엇을 뜻하는 건가?

이 즈음에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렸다. 북한이 정말 경협을 원했다면 남북장관급 회담을 매개로 경협추진위로 이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별개의 채널을 가동하려고 이 전 총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무엇을 원하는 건가?

단서가 있다. <조선일보>가 전했다. 이 전 총리가 방북 후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주력하고자 하는 일이 평화체제 문제라고 했다.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주력한 부문은 경제적 대가가 아니라 북미 수교라고 했다.

이 두 소식엔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총리나 북한 모두 당장의 소득 즉 경협이 아니라, 근원문제 즉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이 전 총리가 추구하는 바가 평화체제라면 당장 밥상이 차려지지는 않는다. 뜸을 들여도 한참 들여야 한다. 북한이 2·13합의에서 도출한 초기이행조치에 성실히 임해야 하며, 북미관계가 본궤도에 올라야 하고, 북일관계도 해빙무드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이 할 역할이 적잖다.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회담 막후에서 양자의 이견을 조율하고 조정해내는 역할을 남한이 맡아야 한다.

엄밀히 따져보면 지금 당장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얻을 게 별로 없다. 2·13 합의 이후 남북, 북미, 북일회담이 가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모든 게 현재진행형이다. 어디서 돌파구가 열리고 어디서 꼬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따로 속도를 높이는 건 위험하다. 또 서로 주고받을 게 확실하지도 않다.

지금은 다질 때다. 각종 회담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귀착되도록 엔진에 기름칠 하고 연료를 주입할 때다.

이 전 총리의 방북을 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의 큰 가닥은 잡혔다. 남은 과제는 미세조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간 공조가 중요하다.

남북장관급회담을 미세조정 창구로 삼을 순 없다. 그건 남북교류와 관련된 현안을 조율하는 테이블이다. 별도의 채널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 돌파구 아닌 마침표

가닥이 잡힌다. 이 전 총리의 방북은 당장의 성과를 겨냥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길닦기용에 가깝다. 방북 성격이 이렇다면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형식을 부풀리면 부담이 가중된다.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전 총리가 닦는 길의 종착점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전까지 운위됐던 남북정상회담과는 성격이 다르다. 돌파구로서의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마침표로서의 남북정상회담이다. 성격이 이렇다면 개최 시점은 늦어진다.

평양으로 떠나는 이 전 총리의 말에서 확인된다. "북핵문제 초기조치 이행이 끝나는 것(4월 14일)을 확인하고, 북미관계가 돌아가는 것도 봐야 하지 않나. 일러도 5월 말을 넘어가야 (남북정상회담이)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분석한 이 전 총리의 "내 일"도 이 때 가봐야 알 것이다. 이 전 총리의 역할이 길닦기라면 방북 이후 부산하게 움직일 것은 분명하다. 자연스레 언론의 집중 조명 대상이 될 것도 뻔하고 국민 인지도가 올라갈 것도 확실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전 총리가 역사적 사건의 '산파'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이력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영역에까지 나서 '옥동자'가 되려고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늘 변하는 법이다.
#이해찬 #남북정상회담 #대선 #평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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