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금은 한국의 보수에게 위기인가, 새로운 도약인가.
"하이데거 철학에 '인 데어 벨트 자인'(In-der-Welt-Sein)이란 게 있다. '세계 안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이란 점을 항상 머릿속에 두어야 한다. 세계구조 속에 얽혀 있는 한국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 얘기가 된다. 보수나 진보 개념을 얘기할 때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가 분단국가와 한미군사동맹이라는 큰 프레임(틀) 속에 있다는 점이다. 보수와 진보를 논할 때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속된 말로 '손오공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이 있다. 박명림 교수가 '미국의 한계'라는 개념을 쓴 것 같은데, 이는 우리의 보수나 진보가 미국의 손바닥에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보수는 기본적으로 뭐냐? 한미군사동맹에, 미국에 의존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세력이다. 이게 제일 중요한 사실(fact)이다. 여기서 못 벗어난다. 거기에 중국과 북한이 있다. 요새 보수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반환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보수 쪽에서 헛다리짚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작권 반환은 미국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울트라 라이트(극우)까지는 안 가도 보수 본령이나 본류에서도 전작권이 환수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얘기되다 쏙 들어갔지만, (동북아)균형자이론이 나왔다. 미국, 중국, 북한과 우리의 위치(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얘기다. 한미군사동맹 혹은 미국 의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외교적으로 대미완전 의존형에서 조금 벗어나서 프리핸드(free hand, 자유재량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한번 만났을 때 광해군 얘기를 했다. 당시에 광해군은 현명했다. 명나라에만 의존하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일어서고 있다는 점을 헤아려 현명하게 청나라와 충돌하는 걸 피했다. 이는 외교기술상의 얘기다. 광해군이 죽고 난 다음에 외교를 잘못해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세계 속의 한국'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조건이다. 국제문제에서 광해군적 외교기술로 가는 것이 진보파의 방향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 보수파의 방향이다."
- 현재의 이런 상황이 보수진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까, 불리하게 작용할까.
"현재 보수진영이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전작권이 한 가지 예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한국의 보수는) 대미 의존에 안주하는 자세를 못 버리고 있다."
- 그런데 이것이 참여정부의 자주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 부시정부의 대아시아정책이 변하면서 생긴 것 아닌가.
"미국 안에도 중국을 바라보는 태도에 두 가지가 있다. 중국과 협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쪽과, 중국을 계속 강하게 견제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해 대항의식을 가지고, 일본-미국-호주-인도 선으로 해서 중국을 견제하자는 쪽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룸(room, 여지)이 있는 것이다. 거기서 광해군적 외교를 추구하는 공간이 있게 된다. 우리도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액터(actor)가 될 수 있다. 주역은 아니더라도 조역으로라도 상황을 변경시킬 수 있다."
- 한국의 보수는 이런 상황의 변화를 거역하고 있지 않나.
"거역한다기보다 거기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진짜 '한국의 보수'라면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는 부시정권을 '친북좌파'라고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정도로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왜 한국의 보수가 그런 흐름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한미(일)동맹 찌꺼기의 축적이 방대하다. 사고나 이해방식이 거기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 역사가 얼마냐. 짧게는 한국전쟁 이후, 길게는 미국 선교사가 올 때부터다. 그런 축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한국 보수가 진화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한국 보수가 시대) 적응력을 못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의식구조 등에서 여러 가지 축적이 있다. 너무 오랜 축적이다. 장기간의 축적에서 탈피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도 대부분 미국 유학 학자들이다.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으니, 그런 프레임을 갖고 그런 방식으로만 사고해왔다. 미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무한 사람의 저항도 많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미 완전의존형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YS 때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완전 탈피는 아니지만 약간의 탈피를 통해서 약간의 룸을 만들었다."
"언더독의 힘 때문에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극우적 정책 펼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