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가 교명 변경 공청회를 열려고 하자 공주 시민들이 단상을 점거하는 등 물리적으로 공청회를 무산시켰다.윤형권
학문적, 사회적, 인적 자원이 아직 없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공갈등해결을 모색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상황하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공공갈등해결을 위한 최우선 조건은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당사자들을 찾아내 갈등해결 과정에 그들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는 갈등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정책 입안과 실행에 있어서 영향을 받을 모든 당사자들을 파악하고 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최근 공공기관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시민단체를 참여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공공갈등에 있어서 시민단체는 공공기관처럼 하나의 당사자일뿐 다른 당사자들의 입장과 이해까지 대변하는 대표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산림개발 정책의 경우 환경단체는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변할 뿐 개발에 영향을 받게 될 해당 지역의 농업인, 상공인, 산림업자, 등산모임 등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 그들의 입장과 이해는 그들 스스로 대변하게 해주어야 한다.
모든 당사자가 확인된 다음으로 취할 방법은 정책 담당기관과 당사자 집단의 대표가 모여 진행자를 두고 각각의 입장과 이해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기관과 다른 당사자들이(대부분이 시민단체지만) 이미 공식화된 입장을 재확인하고, 각각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논쟁에 치중하는 공청회와는 다르다. 이 자리는 모두가 마음을 열고 상대의 입장, 이해, 우려를 경청하는 장이 돼야 한다.
진행자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공공기관과 다른 당사자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심해 직접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행자를 사이에 둔 토론은 공공갈등해결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아직은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한국 상황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공기관과 시민들의 신뢰도 회복되고 한국사회에 맞는 공공갈등해결 방법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해보자'에서 탈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은 물론 전체 사회 차원에서 인적 자원을 키우는 일이다. 특정 정책에 영향을 받을 당사자들을 찾아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수직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현 기성세대 누구도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구체적인 방법과 자료를 제시해주지 않고 공공기관과 공무원들에게 당사자에 초점을 맞춘 정책 입안과 실행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각 기관이 훈련 프로그램과 연구를 통해 인적 자원을 키울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공동체나 시민단체 차원에서의 인적 자원도 키워나가야 한다. 사회 전체가 변해야 효과적인 공공갈등해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중하고 점진적인 연구와 실천이 중요하다. 외부 인력을 동원한 몇 개월의 연구를 거친 후 새로운 공공갈등해결 방법을 찾아냈으니 일단 법부터 만들어 시행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학문적, 사회적, 인적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법이 제대로 실행될 리도 없고 부작용의 소지도 크다.
아무리 한국사회의 변화 주기가 짧고 “일단 해보고” 식의 정서가 만연했다 하더라도 정부차원의 공공갈등해결 정책을 속전속결 식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다면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전문 연구팀을 만들어 한국의 공공갈등 상황과 성향을 분석하고, 이론을 세우고, 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결과를 다시 이론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국사회에 맞는 공공갈등해결 제도를 만드는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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