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섬에 한 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 안도현의 '섬' -
@BRI@서른 살의 겨울,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집을 떠났다. 집이라야 나 혼자 지내는 자취방이니 누구한테 어디로 떠난다느니 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배낭 속엔 양말 두 켤레, 읽다 만 책 한 권, 윗옷 하나쯤 들어있었던 것 같다.
퀭한 바람에 가슴을 맡긴 서울역 대합실에서 난 망설였다. 목적지 없이 떠나온 길이라 행선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에 띈 글자 하나, 여수였다. 여수, 언제부턴가 가보고 싶었던 곳. 여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오동도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뿐 아무것도 없었다.
표를 끊고 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내 마음은 그저 쓸쓸했다고 할까. 시련을 당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디에 마음 하나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풍경도 마음 따라가는지 아무것도 없는 빈 들녘, 눈으로 스치는 집들이 무척 스산해 보였다. 평택을 거쳐 대전 그리고 전주를 지나 여수에 도착. 여수에 도착할 즈음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작은 역 대합실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을 떠올리게 하는 중로 몇 사람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쏯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략>
-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
시인이 바라보던 역에는 톱밥 난로라도 있었지만 내가 내린 역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 역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그리움이 남아 떠나려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역문을 나서며 택시를 잡았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오동도란 섬에 가기 위해서다.
"어디 가십니까?"
"오동도요."
"네? 거긴 왜 갑니까?"
"그냥요."
그런 내 대답이 수상스러운지 택시 기사는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밤에 오동도엔 왜 가냐고 자꾸 물어댔다.
"거길 이 시간에 왜 가려고 합니까?"
"왜 가면 안 됩니까? 그걸 왜 자꾸 묻습니까?"
"아, 아뇨. 그, 그냥."
마지못해 출발하면서도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날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아마 택시 기사는 내가 혹 자살을 하러 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더구나 역에서 오동도에 가는 매표소까진 택시로 오 분도 안 걸렸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다 왔다며 날 내려주었다. 내려주면서도 의심스러운 눈초릴 떼지 않았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나였다. 이리 가까우면 길이나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