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혁과 장인 민충식(정한용)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보다, 정치적 야망과 명예를 매개로 한 부자지간에 가깝다.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아들이 아버지의 한을 풀려는 이야기도 성립된다.iMBC
두 캐릭터의 입장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은, 두 캐릭터의 '출신 성분'이다. 최도영은 의사 집안의 '도련님'이며, 장준혁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렵게 의사가 된 입지전적인 캐릭터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제 막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한 '출세형 아웃사이더'다.
장준혁은 "결혼도 정치"라는 생각을 가진 캐릭터다. 의사로서 업적은 쌓지 못했어도 큰 부를 거머쥔 장인을 선택해 그의 돈과 인맥을 유감없이 활용하는 정치적 감각을 가진 캐릭터다. 일본판에서는 그의 장인도 대단히 노회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자이젠 고로가 와인 바의 마담과 내연의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그 내연의 관계를 은유해 '거래'에 대한 뼈있는 강의까지 한다.
장준혁과 그의 장인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라기보다 정치적인 아버지와 아들에 가깝다. 아버지는 인맥과 자금을 아낌없이 후원해주는 대신에,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정치적인 야망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두 '부자지간'은 권력과 명예라는 확고한 공통의 목표가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장(혹은 정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질주한다. 지나쳐 보이는가? 남성 독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단 한번이라도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은 남성, 과연 얼마나 될까? 부러워하지 않은 남성, 과연 얼마나 될까?
장준혁의 '서민성'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애틋하게 그려진다. 그의 어머니는 현실적인 현명함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아들의 성공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아들의 주변에는 가급적 나타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의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갖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아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장준혁도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 댁 앞까지 찾아갔음에도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전화 속의 목소리만으로 잠깐의 위안을 얻는 장면이 있었다. 장준혁의 인간다움이 유일하게 드러났던 장면이었으며, 그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장준혁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비열한 수단마저도 지지를 얻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힘과 권력의 역학을 마주하게 된다. 하다못해 학창시절만 해도 얼마나 많은 '범생이'와 '일진'이 있었던가? 그런데 군대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니, 학교에서의 역학 관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현실의 권력은 차원이 다르다. 좌절을 겪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 역학 관계를 제대로 헤쳐나간 사회인은 많지 않다.
그런데 저 장준혁은 너무나도 거침없이 장벽을 뚫고 마침내 과장(정교수)의 자리를 쟁취한다. 야망이 있는 남성이라면, 수단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심정적인 지지부터 떠올린다. 게다가 <하얀 거탑>이 어떤 드라마던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털어버린 획기적인 작품이다.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하얀 거탑>을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어느 남성의 야망쟁취 드라마로 보는 것이다. 장준혁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그래서 많은 것이다. 정치판을 한 번 돌아보라.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건설회사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단 12년 만에 사장이 된 어느 대선주자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중에 '검증'과 '의혹'의 여파 속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권력에 대한, 그리고 야망에 대한 한국 남성의 의식을 알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게다가 장준혁은 '아랫사람'을 다루는 처세까지 능숙한 완벽한 정치인이다. 그런 장준혁을 선호하는 남성의 시선에,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데나 나서 오지랖을 자랑하는' 식으로 그려지는 이윤진은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하얀 거탑>의 결말은 어떻게 그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