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교과서' 읽으니, 참여정부가 보이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2.16 13:02수정 2007.07.0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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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단이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단이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제'는 이제 '정치'다. 정확하게는 '이제 정치'인 것이 아니다.

유사 이래 인류에게 있어서 먹고 사는 문제만큼 정치적인 것은 없었다. 노사로 대변되는 경제 주체들 간의 대립과 갈등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

교육부가 그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그것도 전경련과 한 편이 돼 섰다. 전경련과 공동으로 제작한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공동저자에서 교육부(와 전경련) 이름을 빼는 것으로 '편향된 교과서 시비'를 우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경향신문>은 노동계도 노동조합의 입장이 반영된 경제교과서 모형 개발을 교육부와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한다('노동계도 '경제교과서' 추진'). 민주노총은 "재계와 사용자 입장에서 서술된 교과서가 나온 만큼 노동계의 시각이 반영된 교과서도 있어야 사회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며 "교육부에 경제교과서 모형의 공동 개발을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교육부가 어떻게 나올까? "노동계가 공식 제안해 오면 그 때 가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재계의 논리에 편중된 이번 교과서 모형의 수정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거센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올까?

<조선>도 정부도 한 마음 한 뜻 "차세대 교과서가 좋다"

@BRI@<조선일보>는 '경제교과서,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를 다시 살폈다. "노조활동 때문에 임금이 오르고 고용도 줄어든다는 의미를 정면으로 담고 있는 등 노동계나 진보단체를 자극하는 표현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라는 재계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정부개입'이나 '노조' '성장-분배' '기업의 이윤추구' 같은 민감한 논점을 다룬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다가 "하필 신문 확장 문제를 예로 들어 주요 언론들과 불편한 관계인 청와대가 달가워할 리 없다"는 해석도 전했다. 어떤 내용이길래 그럴까?

"정부가 신문을 돌릴 수 있는 최대 부수를 제한한다고 하자. 새로운 사람이 이웃에 이사 왔을 때 (신문배달원인) 나는 그에게 신문을 구독하도록 노력하겠는가? … 정부의 개입은 나에게 이익의 감소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초래한다. (경제교과서 모형 49쪽)"


정말이지 청와대는 물론 이 정부로서는 달가워할 리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다음 기사 내용을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11일자 청와대 국정브리핑도 '균형 잡힌 차세대 경제교과서'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시민단체·언론계·학계·노동관련 전문가·현직교사 등 다양한 이사로 구성돼 균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조선일보>가 적시한 11일자 <국정브리핑>(국정브리핑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정홍보처'에서 낸다. 청와대 브리핑에 그것을 링크해 실어놓았을 뿐이다)을 보자.

'균형 잡힌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 나왔다'가 기사의 제목이다. <조선일보> 기사 대로다. 내용을 보면 한 술 더 뜬다.

"현재 중3·고1이 배우는 사회과 교과서의 경제관련 내용과 고2·3학년용 경제교과서에 대해 기업은 지나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많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는 점을 이번 '경제교과서' 제작의 배경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경제계 뿐 아니라 시민단체·언론계·학계·노동관련 전문가·현직교사 등 다양한 이사로 구성돼 균형성을 확보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과서 내용은 현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고,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데 중점이 맞춰졌다.”

그러니, 교육부가 내용을 수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도, 예정대로 저자 이름만 바꿔 올 3월에 배포하겠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가장 모범이 될 만한 '교과서 모형'인데 문제될 게 뭐가 있겠는가?

참여정부의 정체성, 그 본질은...

<국정브리핑>이 소개한 기존 검정교과서에 대한 '논란'과 전경련과 합작해 만든 '경제교과서 모형'에 대한 교육부의 평가를 보면 교육부, 아니 이 정부가 스스로 검정한 '경제교과서'들이 문제가 있다고 자인한 꼴이나 마찬가지다.

왜 교육부의 일을 정부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키느냐고? 교육부 혼자 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재경부 등과 손발을 맞춰 전경련과 '협약'까지 맺어 추진한 일이다.

<조선일보>는 교육부가 청와대와 접촉한 직후 배포를 중단하고 교육부의 이름을 빼달라고 한 데 대해 재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좌파정부라는 비판을 받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됐다.

그러나 그 같은 촌평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참여정부가 도대체 무슨 정부인지 헷갈리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참여정부 정체성의 혼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아니, 그대로 강행 배포하겠다는 것을 보면 '정체성의 혼란'이 아니라 '정체성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차세대 경제교과서'를 소개한 <국정브리핑> 기사.
'차세대 경제교과서'를 소개한 <국정브리핑> 기사.국정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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