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총머리 소년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컴퓨터 회사인 마이크로 링크(Micro Link)에서 일하는 마이트 베스트레. 같은 직장에만 저렇게 머리를 기른 동료가 무려 10명 정도가 있다고.서진석
세계 최고의 IT 파라다이스인 우리나라에서 보기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이 나라가 소련에서 독립한지 불과 15년밖에 안되는 소국이라는 사실을 보면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에서 인터넷 사용이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을 따져보면, 정말 빠른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의 IT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는, 바로 '말총머리 남자'들의 공이 컸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에스토니아어로 '빠찌카 뽀이쓰(patsiga poiss)'로 일컫는다. 즉 '말총머리 남자'라는 단어이다. 좀 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머리땋은 소년'이 맞을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소년보다는 나이가 훨씬 든, 그리고 예쁘게 머리를 땋지 않고 그냥 묶어서 말총머리처럼 하고 다니는 남자들을 말한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에스토니아에서 컴퓨터 관련업무를 본다는 사람들은 대략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최대의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의 친구 역시 수년간 치렁치렁 기른 머리를 자랑스럽게 펄럭거리면서 업무를 본다. 길거리에서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는 남자들을 본다면, 컴퓨터 관련 업종에서 근무를 하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왜 그들은 머리를 기르게 되었을까?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기 곤란할 만큼 복잡하다. 거기에는 약간은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숨어있다.
IT 강국의 배후에는 소련이 있었다?
일단 에스토니아는 소련 시절에도 서방과의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스탈린과 헬싱키 사이에 배가 오가면서 소련과 서유럽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 노릇을 하고 있었고, 북유럽 텔레비전을 안방에서 보면서 미국과 서방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이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서방 소식, 그리고 집안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세상이야기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의하면 스탈린은 영웅이었고 소련의 체제는 세계 최고였지만, 막상 서방세계는 학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에스토니아의 젊은이들은 그 사실을 다른 소련공화국 국민들보다 훨씬 일찍 알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조건 강조하고 크레믈린의 프리즘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도록 가르치는 인문학은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문학이 아닌 '진실만을 가져다 주는' 기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에스토니아의 젊은이들이 인문학을 대신할 무언가 새로운 것에 갈망을 느끼던 시절 세계에는 컴퓨터라는 것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반소련 감정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사회기득권과 정부에 싫증을 느낀 젊은이들은 미국문화와 히피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천편일률적인 사회 규율과 질서에도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머리를 기르거나 눈에 상당히 거슬리는 옷을 입는 등, 다른 나라라면 한때 불량기 있는 아이들이나 할 것이라고 오해받던 짓을 장래가 촉망되는 컴퓨터 신동들이 하고 돌아다녔다.
게다가 소련 정부는 젊은이들의 그런 행동을 규제하거나 탄압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무리 서슬퍼런 소련 정부라 하더라도 머리를 기르는 것을 규제할 방법은 없었고, 인문학 공부를 등한시하고 컴퓨터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못하게 막을 이유도 없었다.
마침내 에스토니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고, 이미 에스토니아의 IT 기술은 사회주의 체제에 물들어있던 동유럽 국가와 소련의 다른 공화국들보다 훨씬 앞설 수 있었다.
유럽 최저 인구밀도... 그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