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할매 vs 배추도사, 알고보니 두분은 36년생 동갑.박봄이
"아니, 난 새댁이 쓰레기를 듬성듬성 버리면 우리집 것도 같이 버리려고…."
"남이사 듬성듬성 버리던가 띄엄띄엄 버리던가 와 신경을 쓰는교, 이 드릅구로 바닥에 다 흘리놓고 이 뭐하는 짓이고! 여자 혼자 사는 집 쓰레기는 와 디비 보고 난리고, 참말로 취미도 요상하네, 또 우리 아가 와 새댁이고! 아직 시집도 안간 아 혼사길 막으면 당신이 책임 질라요, 어데서 말끝마다 새댁이고!"
오!! 역시 달라, 역시 달라! A급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할매가 뿜어내는 포스에 배추도사 흠칫 하는 듯했으나 여기서 밀린다면 배추도사가 아니지! 바로 굴하지 않고 반격에 나선다.
"아니, 같이 아껴쓰면 좋은 것이제, 왜 소리를 질러! 개들 똥싼 것도 모아서 버리라고 알려준 게 누군데! 새댁, 아니 아가씨가 좀 덜렁대는 것 같아서 어른으로 보고 배우라고 한 거여!"
"개똥 모아서 버리는 게 깨끗한기요? 화장실에 버리고 물내리는 게 깨끗한기지, 어데서 듣도보도 못한 걸 청소라꼬 아한테 가르치는교! 지는 밑에 산다꼬 이 드릅구로 똥을 모으라카질 않나,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노."
바로 다운되는 배추도사,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배추도사가 아니다!
"손녀라고 감싸는 거 아녀! 이 봐, 수돗세가 아가씨 이사 오고 부쩍 늘었어! 아껴쓰는 걸 모른단 말여!"
비장의 카드라는 듯 수돗세 적은 종이를 내미를 배추도사, 휙 낚아채 받아보는 포스할매. 순간 마치 클라크 게이블을 바라보는 비비안리처럼 오른쪽 눈썹이 슬쩍 올라간다 싶더니…,
"…곱하기 2는 뭐꼬?"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 할매 목소리
휙 돌아보는 포스할매, 할매 눈을 보는 순간 난 그 자리에서 락스에 담기는 줄 알았다.
"니, 혹시…?"
"아이다, 아이다, 할매!!!!!! 이거는 개새끼 두 마리 키운다꼬 수돗세 2명분 내라캐서…."
"뭐라~?"
포스할매, 더 이상 볼 거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수돗세 종이를 좍좍 찢으신다. 으아…. 오늘 날 잡았네.
"당신, 당신 손녀가 객지에 나와 혼자 산다카면 이래 할 수 있나, 개 두 마리 키우면 개가 밥을 해묵나, 매일 세수를 하나, 하다못해 개가 옷을 입어서 매일 빨래를 하나. 개새끼 씻기봐야 일주일에 한 번 목욕시키면 그만이야, 그런 걸 가지고 수돗세를 두 사람 몫을 내라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포스할매의 저런 목소리는 13년을 함께 살았던 나조차도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저 목소리는 곧… 할매가 진짜 정말 옆구리 저 밑에서부터 진정한 '분노'라는 것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처음 저 목소리를 들은 날, 내 옷장에 모든 옷이 불에 태워졌다(시험날 학교 안갔다… 그럴 만했지. 살려주셔서 감사할따름. 철없던… 아 옛날이여~♪)
그러나 배추도사는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이런 살기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따 영감… 독허네.
"아니, 내가 그럴라고 한 게 아니고 이 건물 사람들이 하나같이 요구를…."
"이 개콧구멍만한 집구석에 이 가시나 이사 시키면 그만이야, 지가 낭만이니 헛소리 해싸코 기어들어와 앉아 있는기 젊었을 때 고생하는 것도 보람이다 싶어서 냅두는 거야. 근데 이사할 때 하더라도 당신같은 영감탱이는 보다보다 처음이라서 이대로는 못가겠다."
"워쩔건디? 워쩔거여!"
"건물 사람들이 옥상 수돗세 더 내라고 했다캤제? 그래, 몇 층이고, 함 가보자. 가서 내가 설득 시킬테니까네, 함 가보자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이 건물에 굿거리 장단 아줌마며 산삼이며 산삼이 어머님이며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이 오가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배추도사 말처럼 그런 소리를 했을 리는 없다.
그건 처음 수도세 인상 얘기를 할 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마음으로 주고 말아야지 했던 것인데 할매는 손녀가 글써서 번돈 몇 천원이라도 억울하게 쓰는 걸 보고 싶지 않으셨나보다. 흑. 내가 죄인이여.
배추도사의 팔을 끌고 내려가는 포스할매, 배추도사 순간 당황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그럴만도 하지, 누가 그걸 확인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그러나 할매에겐 한순간의 창피함보다 손녀의 코묻은 원고료가 더 소중했다.
"이거 놔요, 왜 이랴, 참 사람 거치네."
"당신이 그랬잖소, 내리가서 물어보자고!"
내가 달려나가 할매를 말리지 않았다면 할매는 정말 세렝게티를 발칵 뒤집어서라도 진실을 가렸을 것이다.
"수돗세 우짤기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할기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아가씨는 특별히 생각해서 1인분만 내도록 할테니께, 고만 하자고. 고만 하자니께!"
패배를 인정하며 배추 잎사귀 떨어질세라 도망치는 배추도사. 장장 반년을 끌며 속앓이 했던 일이 포스할매의 몇 마디에 해결되다니, 역시 할매는 위대해. 그러나 바보처럼 침 질질 흘리며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는 꼬냥이의 등짝을 후려치는 포스할매.
"이 뭐 이리 물렁팥죽같은기 있을고, 첨부터 니가 물렁물렁하이 해서 저러는 거 아이가, 골수 빠지게 글써서 돈벌믄 뭐하노, 니가 미치따고 수돗세를 2인분이나 내나, 으이고 반편아, 반편아."
힝~ 할매가 뒤에 있으니 내가 좀 '모지리'라도 이만큼 사는 거 아잉교? 예? 히히.
덧붙이는 글 | 세렝게티 연재를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쪽지들을 받았습니다. 자칫 오마이뉴스와 어울리지 않아 급배척, 급무시(흑)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처음 고민과는 달리 많은 분들이 쪽지와 리플로 '너같은 글도 있어야 웃을 수 있지 않겠느냐' 혹은 '원래 좀 모질해 보이는 사람에게 급호감이 형성된다' 등등의 이야기를 남겨 주셨지요. 그러면서 '왜 빨리 글을 올리지 않느냐, 이젠 배가 불렀냐'는 질책성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전 이렇게 답변을 해드리곤 하지요.
'매일 매일이 사건이면 꼬냥이 삶이 '거침없이 로우킥'이지 사람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오만 잡생명체들이 한데 서식하는 세렝게티라지만 이렇게 한산한 날도 있어야 꼬냥이도 여유있게 무한도전 다시보기도 좀 돌려보고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박사장, 사랑해~)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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