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UN에 의한 영토분할 발표 이후 군청색의 팔레스타인이 3단계에 걸쳐 점차 하늘색의 이스라엘로 변해가는 모습.
올리브 나무의 수난
유대인,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모여살던 팔레스타인에서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이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은 즉각 이스라엘의 독립국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인정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118만명으로 63만에 불과한 이스라엘에 대비해 인구면에서 두 배였지만, UN은 영토의 77%를 이스라엘에 귀속시켜버렸다.
멀쩡히 살던 나라를 빼앗긴 팔레스타인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으로 복귀하는 '시오니즘'에 극도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아랍 형제국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제 공격을 벌이지만 불과 6일만에 대패하고 만다. 이름하여 1967년의 '6일 전쟁'이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하던 처지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이번에는 점령군의 형태로 이스라엘이 23%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주둔하더니 급기야 야금야금 그 땅에 이스라엘의 정착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정착촌 건설은 곧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하여금 생업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갈릴리 호수로 대변되는 북쪽의 수원지로부터 시작되는 요르단강 인근의 불모의 땅, 수 천년을 뿌리내리고 살아온 마을 언덕 마다에 2000년 넘게 서있던 올리브 나무에도 수난이 찾아온 것이다.
정착촌은 당연히 요지 중의 요지에 건설되었고 그 땅에서 수십 세대 째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한 수십 수백 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편리와 주거 및 안전을 위해 뽑히고 잘려나갔다.
쇠락해가는 베들레험
지난 1995년 이래 매년 100만이 넘는 여행객으로 북적대던 베들레헴은2000년 민중봉기운동 '인티파다'의 발발로 2002년말 15만으로 바닥을 칠 때까지 곤두박질 치더니 2005년과 2006년을 걸치며 40만으로 다시 늘어나고는 있으나 여전히 예년의 영화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팔레스타인 마을과 달리 변변한 산업이나 농업이 발달되지 못한 베들레헴의 경제 상황이 관광객 수의 감소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베들레헴의 실업율은 이미 65%를 넘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심각할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관광객 격감으로 인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산업 중 하나가 올리브 나무 조각 산업이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미 수 백년 전부터 예수님 관련 조각품을 만들어 팔던 베들레헴 인근의 팔레스타인 조각상들은 경제 자체를 독점하고 있는 이스라엘 상인과 이스라엘 정부로 인해 조각을 만들어도 팔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제품이 팔린다고 한들 제값을 받을 수가 없다.
한 개에 12불에 팔리는 올리브 나무 조각품은 이스라엘 상인의 손을 거쳐 중국에서 플라스틱을 재료로 한 복제품으로 거듭나 시장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1불에 팔린다. 인터넷을 이용해 미국, 유럽 등지로 부터 제값을 받고 대형 주문을 수주하는 행운이 찾아와도 모두 꿈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 검문을 거치며 창고에서 의도적으로 며칠이 지체되고 나면 바이어는 계약을 파기하기가 일쑤이다.
베드레헴 상공회의소의 지난 2004년 통계에 의하면, 베들레헴 인근 마을 베이트 샤불에서 수 백년간 올리브 나무 조각을 해온 142개 전통 공예 가구점 가운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게는 겨우 63개다.
5명 이상의 종업원을 두고 하루 10시간 이상 활기로 넘치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산업이 이제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가게 마저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차를 모시는 '죽은' 공간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