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만들어진 상징물의 미래는 없다

다시 찾은 국립 5·18 민주 묘지

등록 2007.02.11 19:46수정 2007.02.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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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립 5·18 민주 묘지 신묘역

국립 5·18 민주 묘지 신묘역 ⓒ 이기원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 전남 지역 답사가 있었습니다. 역사가 전공이라 학기마다 지역별 답사가 있었습니다. 학점을 따야 하는 전공 필수 과목이었지요. 고대 유적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상적인 답사였습니다.

그 답사길에 남들이 다 잠든 깊은 밤중에 몇몇 학생들만 도둑고양이처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전남대 학생의 도움을 받아 어둠을 헤치며 갔던 망월동 묘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묘지마다 죽어간 사람들의 핏빛 사연들이 적혀 있었지요. 그 사연들 읽어가면서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2007년 1월 다시 망월동 묘지를 찾았습니다. 이젠 국립 5·18 민주묘지라고 부릅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갔습니다. 이젠 막을 사람도 없습니다. 숨죽이며 도둑고양이처럼 찾을 이유도 없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참배하는 성역화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a 구묘역 가는 길의 대자보

구묘역 가는 길의 대자보 ⓒ 이기원

성역화된 공간에 걸맞게 묘지(신묘역)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죽어간 이들의 피어린 사연이 묘비석 뒷면에 보기 좋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사연들을 읽을 때면 눈시울이 더워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린 겨울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에 대자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5·18 민주묘역을 방문한 이들의 느낌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이 대자보를 읽어가면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역사는 힘 있는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만 씌어지는 게 아니라, 힘없는 다수에 의해 씌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구묘역에 갔습니다. 80년 5월 참혹하게 죽어간 광주의 넋들이 손수레에 청소차에 실려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80년 이후 혹독했던 시절 제 몸을 불사르며 죽어간 넋, 의문사한 열사들의 넋이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묘비마다 '세상을 바꾸자!'는 띠가 둘러 있습니다.

a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힌 유래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힌 유래 ⓒ 이기원

a 구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민박 기념비

구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민박 기념비 ⓒ 이기원

구묘역 입구에는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혀 있습니다. 1982년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 방문했던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가 뽑혀져 이곳에 묻힌 것입니다. 땅에 묻힌 비를 보면, 힘 있는 자들의 오만이 후일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경남 합천 지방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에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새천년 생명의 숲'이란 공원의 이름을 전 전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꾸려 한답니다.

일해공원 명칭을 고집하는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론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상징물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무리하게 특정인의 공덕을 미화하기 위해 세운 공덕비가 뭇 사람들의 돌팔매에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잘못 세워진 공덕비를 향한 민중의 저항 의식이 비석치기로 되살아난 과거가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한 서린 반대를 외면하고 만든 상징물은 언젠가 힘없는 다수에 의해 형편없는 흉물이 되어 방치되곤 했던 과거 사례를 되돌아보길 바랍니다.

a 나주 궁삼면 항일농민운동 기념공원 탐관오리 공덕비 옮겨진 유래를 적은 비

나주 궁삼면 항일농민운동 기념공원 탐관오리 공덕비 옮겨진 유래를 적은 비 ⓒ 전국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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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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