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남주 시인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어둠은 안개를 삼켰고 어둠 속의 안개는 별빛을 삼켰다. 적막한 산촌의 밤은 그래서 더 없이 칠흑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시집을 펼쳐 들었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산 김남주 시인의 시집 <사상의 거처>이다.
시집이 없어 산 것은 아니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집이 헌책방에서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게 안타까워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일로 인해 똑같은 시집 두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혔다. 책장에 꽂고 나니 김남주 시인이 외롭지 않아 보여 좋았다.
"손 떨리는 아픔으로 그대에게 김남주 시인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욱 더 건실한 여성으로 자라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동기로 남았으면 합니다."
시집의 표지를 열자 책 선물을 한 이의 말이 볼펜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뜬 지 1년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이 주고 받으려던 것은 단순히 김남주 시인의 시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해방전사가 되길 주저 하지 않았던 김남주 시인이 남기고 간 올 곧은 시대정신을 주고 받으려 했을 것이다.
김남주 시인을 떠나 보낸 지 13년이 되었다. 2월 13일이 바로 그의 기일이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은 강산이 서너번은 바뀌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그렇게 변한 세상을 두고 어떤 이는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노래를 술만 취하면 했다. 또 어떤 이는 바뀐 세상에 걸맞는 담론을 생산하자고 주장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요즘 상황을 두고 김남주 시인은 특유의 음성으로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변한 건 너희들의 기름진 얼굴과 두툼해진 뱃살뿐'이라고 일침을 가할지도 모르겠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바뀐 세상을 따라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