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부분에서 방향을 약간 돌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과격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오늘의 한국사회를 묵시록적 현실로 이해하는 한 작가의 시각에 대해서도 물었다. 가령 소설가 이문열은 최근에 출간된 <호모엑세쿠탄스>를 통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의 상황이 남북간의 갈등은 물론 남남간의 갈등까지도 증폭된 일종의 '정신적인 내전' 상황으로까지 보는 비관적 관점을 보여준 바 있다.
"그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그리고 악의적인 판단이고 대중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과장이다. 지금 민주정권의 무능 때문에 정권이 보수 쪽으로 간다면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그건 막을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정권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민주정권에 떠넘기면서 사회의 위기상황이니, 남북분단이 있는데 다시 동서분열이 온다느니 하는 과도한 공포와 혼란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범죄다.
지금 분단 이후 60년 가운데 김대중 정권 이후 가장 남북관계가 순조롭고 원활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걸 어떻게 거짓말할 수 있나. 그래서 상상할 수 없었던 금강산 관광의 길이 열렸고 개성공단의 생산품이 남북모두의 이익 속에서 생산되어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의 네오콘, 극우세력들조차 직접 개성공단을 가보고 나서 이건 건설적이구나 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내부에서 작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그건 안 된다. 작가는 한 사회의 모순과 비인간적인 것을 주도면밀하게 꿰뚫고 투시해서 좋은 쪽으로 반전시키려 노력하고, 사회불안요소나 동요가 있을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말해주는 자지, 그것을 조장하고 불안을 더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작가들은 보다 더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세력의 책동에 대해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지만 민주화세력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사정권 30년보다 문단권력 40년이 더 나쁘다"
2007년은 대선의 해이다. 여느 대선이 있었던 해처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분주하게 전개될 것이고, 현실정치에 대한 지식인들의 발언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들 역시 정치적 발언의 수위를 조정할 듯한데, 보수주의를 뚜렷이 한 이문열은 정치적 발언 자제를 선언했지만 그것이 쉬워보이지는 않고, 진보 진영의 작가 황석영은 반대로 정치적 제3세력의 형성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고 선언했다. 작가의 현실발언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문인이 현실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모순과 갈등에 대해서 감시 감독하는 관점에서 발언해야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기의 사적 입장, 개인의 감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자기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희생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내가 <태백산맥>을 쓸 때, 주변의 후배 작가들이 당신은 왜 가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투하는 시간에 글로써 투쟁하면서 더 많은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때 후배들은 나를 기회주의자로 몰아세웠지만, 결론적으로 그러한 선택이 나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현실정치의 비판적 관찰자의 몫을 피해서는 안 되지만, 직접참여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소설 <태백산맥>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평소 조정래의 문학에 대한 문단적 평가의 문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통해서 한국의 근현대 민족사를 탁월하게 형상화해 왔다. 특히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해방 직후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와 이념적 지향을 보여준 다채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해방정국의 민족사를 거대한 벽화처럼 그려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러한 조정래의 문학세계에 대하여 이른바 주류문단에서의 평가,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민족문학론’을 주된 문학적 이념으로 하고 있는 창비(창작과비평사)조차 조정래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1980년의 광주 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임철우의 작품세계가 비평적으로 배제되어 온 것과도 같은 형국이다. 이러한 문단적 상황에 대한 소회도 물어봤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문단의 섹트와 파벌주의 때문이다. 언젠가 국외자인 강준만 교수가 문단권력이라고 해서 창비와 문지(문학과지성사)의 문제를 단행본으로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문단의 골이 있다. 나는 그 어떤 섹트에도 들어간 적이 없고, 어떤 섹트에서도 지원받고 문학을 한 적이 없다. 이게 내 자존심이다.
언젠가 <오마이뉴스>에서 강준만 교수가 문단권력을 주제로 한 책을 냈을 때, 인터뷰가 온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군사정권 30년만 나쁜 것이 아니고 문단권력 40년이 더 나쁘다. 그랬더니 기자가 이대로 써도 됩니까 해서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한국의 문단이 그 정도로 소아병적이고 폐쇄적이고 편협하다. 자기 파 아니면 언급을 안 하고 묵살해버리는 패거리 의식이 너무 심하다. 문화에 종사하는 자들이 가장 반문화적 행위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