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지 대칭성.이종필
왼쪽 그림은 흔히 보는 파동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전자 같은 물질도 이런 파동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파동의 위상을 측정하는 가로축과 세로축은 우리가 임의로 그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축을 변화시켜 파동의 위상을 바꾸더라도 물리법칙은 바뀌지 말아야 한다. 오른쪽 그림과 같이 세로축을 옮기면 이에 따라 파동의 위상이 바뀌게 되는데, 이 효과를 상쇄시키려면 파동 자체를 그만큼 같이 옮기면 된다.
바로 이런 역할을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 수행하게 된다. 여기에는 빛의 양자적 상태인 광자(photon), W, Z, 그리고 접착자(gluon)가 있다. W와 Z 입자는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로서 광자의 사촌뻘 된다. 접착자는 강력을 매개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는 약간 다른 종류의 대칭성-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대칭성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칭성이란 한마디로 말해 ‘구분되지 않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외모는 대략 좌우대칭이라 거울 속에서 본 모습과 원래 모습이 거의 같다. 주사위에 눈을 표시하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알기 힘들다. 공은 대칭성이 아주 높아서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이다.
과학, '방법'을 찾아가는 먼길
소립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나 힘을 매개하는 입자나 모두 강력한 대칭성을 만족하게 되면 서로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된다. 입자를 서로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질이 그 질량인데, 게이지 대칭성이 완벽하다면 이 세상 모든 입자들은 질량을 가질 수가 없다. 전자나 쿼크나 W 등등 모든 소립자의 질량이 0이 된다.
이는 우리 경험과 너무 다르다. 전자는 작지만 질량이 있다. 광자는 질량이 없다. 그러나 W 혹은 Z가 질량이 없다면 진작에 발견되었어야만 했다. 게이지 대칭성이라고 하는 아주 아름다운 수학적 구조를 가진 물리이론이 현실과 맞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보통 과학이론이 실험과 맞지 않으면 즉각 폐기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과학자들은 게이지 이론을 폐기하는 대신 이 대칭성을 깨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성공적인 것이 바로 ‘힉스 장치(Higgs mechanism)’이다.
에든버러 대학의 피터 힉스(Peter W. Higgs, 1929~)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과학자다. 1929년생이니까 올해로 여든에 가까운 나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힉스 장'(Higgs field)이라는 것이 소립자들의 장(field)과 엉겨 붙어 게이지 대칭성을 깨면서 없던 질량을 만들어 낸다. W와 Z 입자들 또한 아주 무거운 질량을 가지는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그 예측된 값을 가지는 새로운 입자들을 1983년과 1984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힉스 장치에 의하면 '힉스 입자'라고 하는 새로운 입자가 자연에 있어야만 한다. 그 질량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대략 양성자 질량의 약 115배~300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힉스 입자는 다른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독특한 성질 때문에 흔히 '신(神)의 입자'라고 불린다. 고 이휘소 박사가 명성을 날린 것도 그가 힉스 입자를 포함하는 게이지 이론의 내적 정합성을 밝히는 데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참으로 곤혹스러운 점은, 이 정도의 질량이면 지금의 입자가속기에서도 검출되었을 터인데 아직 그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5년 t 쿼크의 발견으로 표준모형의 모든 소립자를 발견했지만 힉스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과학자들이 힉스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표준모형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이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 이론적으로 완성된 이후 30년이 넘도록 그 프리마돈나를 직접 보지 못했다면 누가 봐도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