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 영사실에는 두 대의 영사기가 있다. 한 쪽 릴에 감긴 필름이 돌아가 영사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쪽 릴에서는 필름을 되감기한다.서영화
그런 열띤 경쟁 때문에, 웃지 못 할 일도 생겼다.
"(영화관)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서로 빨리 들어가서 좋은 자리 잡으려고 싸우고 난리니까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손님들 좀 흩어지라고 물 한 바가지를 부었죠. 근데 물 맞고도 '허허'하고 웃고, 손님들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냐면 그 땐 삭막하지도 않고 정이 있던 때라…."
영화가 끝나면 종종 영사실에 몰려오는 관객들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영사기가 신기하니까 어떻게 화면으로 필름이 나가는지 궁금해서 많이 몰려왔죠."
인터넷이 없던 때라 혹자는 유씨에게 무슨 영화가 재미있느냐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면 유씨는 어떤 영화가 좋을 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해줬다. 유씨는 관객과 오가는 대화가 없는 현재 극장 모습을 아쉬워했다.
낭만과 추억... 웃통 벗고 영화 틀고, 줄거리도 뒤죽박죽
과거에는 영사기를 전부 손으로 조작해야 했다. 하나의 릴(필름을 감는 틀)이 15분밖에 돌아가지 않았기에, 2시간 분량의 영화를 틀려면 8개의 릴이 필요했다. 지금은 하나의 릴에 한 시간씩, 두 개의 릴만 있으면 된다. 다음 영화 상영을 위해 필름을 되감는 것도 영사기사들의 몫. 지금은 전기로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일일이 손으로 감아야 했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만 해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어요. 한 편 영화가 들어오면 릴에 꽂아서 1번, 2번, 3번하고 죽 나가서 8번까지 나누는데 1, 2번을 영사하고 나면 필름이 이어지도록 그 다음 번호로 끊임없이 바꿔줘야 했어요. 필름 떨어지고 나면 다시 세팅해서 영사해야 되니까 정신이 없죠."
당시 영사기 작동원리는 재래식 아궁이에 땔감을 때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영사기의 열 때문에 겨울에는 난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했지만 여름에는 찜질방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 관에 5명 정도의 영사기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동 영사기이기에 보통 한 영사기사가 한 관을 맡고 있다.
"그 때가 70, 80년대였는데 너무 바빠서 어쩔 때는 땀이 뻘뻘 흘렀죠. 지금은 영사실에 에어컨이 나오니까 시원하지만 그땐 완전 화덕이었어요. 한번은 너무 더운 나머지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입고 한 적도 있죠. 그러다 손님들이 들어오면 '손님, 죄송합니다'하고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죠, 허허."
지금의 나일론 필름과 달리 당시에는 영사기도 열악하고 필름도 잘 찢어졌다. 필름이 찢어져 영화가 중간에 끊기면 관객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빨리 하라고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살짝만 만져도 필름이 찢어지니까, 화장실 들어가는 장면은 나오는데 갑자기 그냥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이 뜨는 거죠. 필름이 잘려서 두 시간짜리 영화가 1시간 40분짜리가 돼버리기도 해요. 지금은 그렇게 나오면 난리 나죠. 한 번 딱 끊기면 나와서 환불해달라고 할걸요." (웃음)
실수한 적이 있냐고 묻자 유씨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계면쩍게 웃었다. "우리 배울 때, 영화가 두 시간 정도 돌아가는 데 몇 번 체인지를 했겠어요? 1번 필름 영사가 끝나면 2번을 넣어야하는데, 모르고 3번을 넣어버렸어요. 필름을 바꿔버린 거죠. (웃음) 영화가 뒤죽박죽됐죠."
그런 실수 때문인지 45년이라는 오랜 세월이건만 유씨는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