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31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1가 매경미디어센터내 사무실에서 긴급조치 판결문 1,412건을 분석한 긴급조치위반 판결분석 보고서가 수록된 '2006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배포했다. 사진은 보고서 중 '사건번호' '적용사항' '피고인 성명 및 직업' '형량' '판결요지' '재판관' '비고' 등의 내용이 담긴 긴급조치위반 판결분석의 일부분.오마이뉴스 권우성
유신시대 긴급조치 위반자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들의 명단공개 여부를 놓고 언론과 정치권의 논쟁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재판의 경우 헌법상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판결문의 경우에도 재판에 관여한 판사가 반드시 날인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 제27조 제3항에서는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면서, 헌법 제109조에서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위하여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일반국민에게 공개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판사는 그만큼 책임을 가지고 판결을 해라는 뜻이다.
@BRI@물론 헌법에서는 공개재판의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판결문은 반드시 공개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판결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판결한 법관의 표시 및 서명날인을 하여야 하는 것은 판결문의 필요적 기재사항이므로 판사의 이름이 빠진 판결문은 판결로써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판사의 서명날인은 이미 판결문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본다면 판사명단의 공개가 필요하냐에 대한 논쟁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판사이름을 익명으로 하여 발표한다면 그것은 이미 판결문이 아닌 것을 공개하는 것이며 또한 해당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임은 물론 그 당시의 판결을 스스로 범죄시 하는 것으로 오히려 해당판사에게 불명예를 안겨주는 형국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결문의 공개와 판사 이름의 공개는 불가분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판사명단의 공개여부가 아니라 당시의 판결문을 공개할 것이냐의 여부에 모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개재판의 원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판결문이 공개되어야 하고, 더욱이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도 판결문의 공개는 필수적인 것이므로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사회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건의 경우 법원 게시판 등을 통해서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고, 다만 피고인들이나 주위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름 등 일정부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긴급지치 관련 사건의 경우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일부 내용에 대하여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판결문의 공개가 긴급조치 관련 판결에 관여한 판사들을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긴급조치 사건에 관여 되었던 판사들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긴급조치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다만 긴급조치의 내용자체가 국민에 대한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임은 물론 사회정의관념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저항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그러한 국민적 저항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억압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당 긴급조치가 위헌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법원이나 국민들은 해당 국가기관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어야 할 것이나 당시 위헌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헌법위원회 등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판사들은 사직을 하는 방법 이외에는 재판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상당한 제약이 있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해당 판사들이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서 양형과 관련하여는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선고할 수 있었을 것이나 당시의 절대권력자에게 대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져 여러형태의 불이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판사라는 역할이 그러한 경우에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변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앞으로 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어떻게 용기있는 판결을 하여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논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시에 그러한 재판에 관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률을 적용하는 전문적인 지식인으로 국가의 불법적인 권력행사에 적절한 의견을 표명하거나 대항한 적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모든 지식인이 방관자가 아니었던가?
언론은 이번 논쟁의 주체돼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