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방송사 앞에서 매일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진영 전 아나운서.박주현
평소 같이 일하던 간부급 선배들은 "결혼도 했는데, 남편이 벌지 않느냐"며 사직을 권했다. 무의식중에 나온 선배들의 '충고'였지만, 지난 4월 결혼한 이씨는 아나운서로서 일한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말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씨는 결국 3년 10개월 동안 일한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복직을 요구하며 매일 오전 8시부터 '비정규직 양산하는 전주MBC 각성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정문 앞을 지키고 있다.
그는 31일 기자를 만나 "법적 대응을 준비하기에 앞서 공론화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피켓시위를 하게 됐다"며 "복직도 중요하지만, MBC가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사측의 재계약 불가에 대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부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재계약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일했는데, 갑자기 회사의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경영난 등을 이유로 재계약을 맺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계속된 고용으로 회사가 큰 손해를 본다든지, 업무 처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회사측의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사는 2004년부터 준비한 중장기적인 계획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때 알려줬어야지 왜 진작 재계약 불가 방침을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나이 제한에 걸려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자질이 부족하다는 회사의 주장에 대해 이씨는 "참을 수 없는 인신공격"이라며 "바쁜 TV 방송 일정에 라디오 캠페인 원고작성, 내레이션 등 식사시간까지 아껴가며 열심히 일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입사 이후 업무평가와 관련돼 어떤 결과도 통보 받아보지 못했다"며 회사측에 구체적인 근거를 요구했다.
프리랜서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해 "급여상 차이가 없다해도 계속해서 다른 일할 곳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사측의 배려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로 전환할 경우, 방송 횟수당 급여를 받기 때문에 시간외 수당은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 보장받았던 4대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유명 아나운서들이 더 넓은 영역에서 일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것은 이씨와 같은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전주MBC "계약 만료돼 내보낸 것"
전주MBC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계약 만료에 따른 조치일 뿐 성차별이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전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계약 만료 시점에 이씨를 포함한 두 명의 아나운서에게 프리랜서를 보장했지만 이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문제가 비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역 방송사들도 IMF 이후 극심한 경영난, 세계화로 인한 경쟁의 심화, 디지털 혁명으로 기술의 변화, 시청자 욕구의 다양화 등으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며 "불가피하게 일부 지역계열사들은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을 고용하는 추세"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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