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악수하는 자리 옆에 보이는 한 교수.청와대 브리핑 홈페이지
턱시도를 갖춰 입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화려해 보이는 만찬 통역. 하지만 일에 전념해야 하는 통역사는 식사도 제때에 하기 어렵다. 남들이 다 식사할 때 통역사는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 식사를 챙기는 것도 고객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식사를 챙겨먹지 못했어요. 하지만 배고픈 상태로 오래 있는 것도 집중을 필요로 하는 통역에 지장을 주더군요. 식사제공을 받더라도 못 먹을 정도로 식욕이 없어지기도 해서, 냄새가 적고 먹기 편하며 통역에 장애를 주지 않는 것으로 간단히 먹어요. 식사 제공이 되지 않는 자리에서는 사전에 좀 먹어두거나 샌드위치를 부탁해 이동 중에 먹기도 합니다."
또 통역사는 연사보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국제회의에서 세계 정상들과 함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 우쭐한 기분이 들 법도 하지만, 통역사가 나서는 건 금물이다. 통역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하고, 연사가 말을 할 때는 연사와 같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통역사는 통역을 맡은 인사와 함께 행동하기 때문에 의전에도 상당히 신경 써야 한다. 연사보다 말을 지나치게 크게 혹은 빨리 해도 연사의 품격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의상 또한 통역사가 신경 써야 할 부분. 드레스 코드가 있는지 물었다.
"튀지 않는 색을 입어야 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드레스 코드는 없어요. 저는 항상 남색 양복을 입어요. 저기 사진 보이시죠?"
한 교수는 연구실 한쪽에 있는,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과 악수하는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점잖고 무난한 양복을 입은 모습이다.
통역사는 통역을 맡은 인사의 사진 촬영에도 신경 써야 한다. VIP가 입을 여는 순간 통역사는 그 옆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에 통역하다 보면 그 외의 일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면 VIP들만의 사진이 필요한 사진 기자들한테 "비켜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한다.
심지어는 "저 사람 뭐야"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단다. 한 교수는 "전문가라면 통역사가 나와서는 안 되는 자리, 예를 들어 두 분만의 사진이 필요한 장면을 구별해서 자리를 피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찬 등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때 통역사에게 개인적인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통역사들도 평소 만나보고 싶었던 인사들을 만나면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질 법도 하다. "전 통역사입니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할 뿐 그 이상의 사적인 관심이나 개인적인 대화는 절제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간혹 가족은 어떻게 되느냐,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스페인어 실력을 쌓았느냐 등 개인적인 관심을 보여주시면 기분도 아주 좋아지고 통역에 힘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통역사는 최고의 전문직이지만,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조연'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 불만을 품은 일부 남자 통역사들은 '최고 대우를 받긴 하지만, 통역사를 그만큼 중요한 사람으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고객들도 있다'는 이유로 35세 전후에 전직을 많이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있는 조직 사회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큰 게 사실"이라며 "통역이 개인적인 성격의 일이고 통역 업무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함을 요구해서인지 통역사가 거의 여성"이라고 말했다. "통역사로서 살아가는 데 여성보다 남성이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역사와 수표는 가짜일 때만 세상에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