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왜 서민들이 등을 돌렸는지 아십니까?

[편지] 열렬한 '노빠'였던 50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등록 2007.01.26 09:12수정 2007.07.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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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오마이뉴스 이종호
저는 영동(嶺東) 지방에서 건축업을 하며 살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집사람은 15년째 화장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대학 1학년 때 휴학하고 군 복무를 하고 있고, 딸도 대학 4학년 때 휴학하고 서울에서 학원 '알바'를 하고 있지요.

@BRI@'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난'이란 속담 아십니까?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탈출하는 이유가 공산정권의 숨 막히는 독재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고,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됩니다.

서민들은 힘듭니다. 옛날부터 악한 사또는 고혈의 세금을 걷는 이로 묘사됐지요. 예를 들면, 탈세를 방지하겠다고 만든 부가가치세가 서민들에게 환급되지 않는 고정세로 굳었습니다.

게다가 물가도 비쌉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1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포함한 13개 주요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쇠고기, 돼지고기 가격이 가장 높다더군요(국제노동기구가 펴낸 '직업 임금 및 식료품 가격통계', 2005년 10월 기준). 뼈 없는 쇠고기 가격은 미국의 6배, 영국과 이탈리아의 5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뼈 없는 돼지고기 가격도 브라질, 영국의 두 배 이상이고 일본보다도 높다고 합니다.

집사람이 장사를 하는 중앙통엔 지금 점포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은 비어 있습니다. 인구 10만이 안 되는 소도시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고,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도 유명무실하게 됐습니다. 장사가 안 돼서 점포를 내놔도 살 사람이 없지요.

"아빠 돈 없는데…." "그럼 은행 가서 빼면 되잖아…." 우리에게도 어린 딸이 이렇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수출이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우이독경입니다. 부동산투기를 벌이는 '가진 자들' 부류에 포함돼 살고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수백만명의 일용직 근로자들이 오늘도 인력소개소를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도 자식 둘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대학에 보내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에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 보내야합니다. 자녀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면 한 해에 2000만원이 들어갑니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국립대학에 보내도 1000만원은 들어가지요.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정부에서 걱정합니다. 지자체에서는 보상금도 준다지요. 그렇지만 전 살인적인 교육비 때문에 자녀를 둘씩이나 둔 것을 후회한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지난 대선에선 열렬한 '노빠'였습니다. 탄핵 때는 울분을 토했고요. 하지만 요즘 대통령님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조·중·동 때문에', '한나라당 때문에', '경제문제는 지난 정부의 유산'이라는 변명에 공감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님 자신의 정치력 부재에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서민들이 당신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집권하셨습니까? 이유야 어찌됐건 서민들이 더욱더 살기 힘든 정치를 한 것은 사실이고, 절망에 빠진 그들을 정선의 강원랜드 카지노로, '바다이야기'로, 로또로 몰아대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지요!

요즘은 옛날과 다릅니다. 환갑이 다 돼가는 저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강남이나 투기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갖고 있는 자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합니다. 저는 건축업을 하고 있어서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공사비 내역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시장원리에 맡긴다며 공사비를 밝히지 않고, 버블(거품)이 걷히면 경제공황이 올 거라는 논리로 원가공개를 거부하지만 기실 자기 부동산이 하락할까봐 걱정하는 거지요.

요즘 대선주자들이 지지율 때문에 웃고 우는 것을 보면 우습습니다. 가장 표가 많지만 침묵 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빅뱅 일 보 직전입니다.

대통령님, 당첨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로또를 사는 참담한 심정을 겪어 보셨는지요?
#노빠 #서민 #정치력 부재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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