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꽝꽝 언다. 보통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장갑을 빨래통에 넣어 뒀다가 얼어버린 모습.전희식
집을 지으면서 저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은 아주 편한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집이 그 핵심입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집,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집, 자연과 순환하는 집, 생활의 편리를 지나치게 쫒지 않는 집…,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뒷간을 본채에서 30미터쯤 떨어진 마당 구석에 재래식으로 두었고 보일러는 안 놓고 세탁기와 냉장고는 아예 들이지 않는 것으로 집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어야 합니다. 손빨래를 하면서 세탁물 하나하나에 얽힌 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되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즐겁게 집을 짓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여럿이 한데 어울리면서 지으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짓는 과정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쓰레기장과 고물상을 돌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합니다.
한때는 멋진 전시장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체통 있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었겠지요. 몇 개의 시장을 거쳤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손때를 묻히다가 이제 무덤으로 가는 길목, 최후의 시장인 고물상에 놓이게 된 가구나 건축자재용품들은 예사롭지 않은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부엌 고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배관작업을 멈춰야 했습니다. 제가 주워 올 싱크대가 구형 조그만 것이 될지 신형의 수도관 내장형이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수도관의 높이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굴뚝과 연기를 빼낼 팬을 못 구해서 부엌 벽 그을음을 지우는 황토 물미장만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사기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만 조급하게 먹지 않으면 일의 진척은 큰 차이가 안 나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커집니다.
돌과 나무, 황토, 모래는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틈틈이 주워 왔습니다. 가스레인지를 하나 주웠는데 도시가스용이었나 봅니다. 시커먼 그을음이 어찌 나는지 냄비나 주전자를 설거지할 때 애를 먹었습니다. 노즐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두 달여 만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고물상에 들렀더니 내가 오기를 태초부터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름 있는 회사의 멀쩡한 가스레인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만원짜리 한 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케이비에스 인기 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에 집짓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텔레비전을 보고서는 집 구경을 옵니다. 주로 일흔이 넘은 노인네들인데 이 분들 덕에 이 마을의 역사와 수풀만 무성한 골짜기마다 누구누구네 몇 집이 살던 터였는지 속속들이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가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공공매체가 갖는 신인도가 덩달아 제 신용도를 높였습니다. 막내인 제가 하는 일은 항상 미덥잖아하고 또 무슨 재를 저지러나 하는 형님들과 누님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는 것입니다.
소박한 효심만으로 부모를 모실 수는 없다
제 집짓기가 저의 일방적인 작심만으로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저랑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를 잡수셔서 다른 사람 말은 잘 못 알아들어도 제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듣는 게 신기합니다.
명절에 형님 댁에 가면 다른 형제나 조카들은 어머니 방에서 5분 이상 머물지를 않습니다. 말이 안 들리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고집 부리고 하니 같이 있으려고 안 합니다. 건성으로 인사하고 쓸데도 없는 용돈이나 쥐어주고 나오지만 저는 꼭 어머니 방에서 잠을 잡니다.
밤 내내 내 몸을 만지고 쓰다듬느라 어머니나 저나 토막잠을 자지만 어머니가 하는 고향동네 지리산 빨치산 얘기, 아버지랑 일본 가서 살던 이야기 등 구수한 경상도 토박이말과 속담들을 듣는 재미가 좋아서 줄곧 녹음도 하고 녹화도 했는데 양이 상당합니다.
다음날 떠나 올 때는 베개 속에서 꼬깃꼬깃한 돈들을 꺼내 제 용돈으로 줍니다. 저는 이것을 농담 삼아 어머니와 하룻밤 자 주고 받는 화대라고 자랑합니다.
두 달 집짓기를 하면서 새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게 알 수 없는 선한 기운이 넘치면서 몸과 마음이 아주 좋은 쪽으로 급속하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주로 새벽녘에 신비하고 인상 깊은 체험들을 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큰 기관을 운영하는 절친한 분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최근 하게 된 제 생각을 말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모 모시는 분들이 부모를 모시고 와서 며칠이고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건물 안에 병들고 늙으신 어른들을 돌보는 시설을 하고 전문 간병인을 배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