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는 그 사람이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김현
신발에는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난다. 신발에는 그 사람의 향기가 숨어 있다. 유명상표가 붙은 신발이건, 이름 없는 싸구려 상표가 붙은 신발이건 나름대로 삶을 기대한다. 그리곤 그 삶을 함께 할 주인을 기다린다.
신발들은 석유냄새 나는 공장에서 나와 신발가게로 향한다. 어떤 신발은 고급 인테리어 시설이 되어 있는 곳에 진열되고, 어떤 신발은 국밥집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장통의 허름한 가게에 진열된다.
그곳에서 각자의 주인을 기다린다. 주인을 기다리며 어떤 주인을 만날까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신발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BRI@그러나 처음부터 인간이 신발을 신었던 것은 아니다. 발가숭이로 세상에 나왔듯이 발도 맨발이었다. 살가죽이었다.
그 살가죽의 맨발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이라는 것을 만들어 신었다. 그 신발에도 빈부의 격차, 신분의 격차는 있어 있는 자와 높은 자는 가죽신을 신게 되었고, 없는 자나 노예는 짚신이거나 맨발로 세상을 걸었다.
지금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어떤 이는 몇십만 원하는 고급신발을 싣고 세상을 활보하고, 어떤 이는 몇천 원짜리 신발을 신고 세상을 걸어간다. 어떤 이는 그 몇천 원하는 신발도 없이, 아니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다닌 살가죽 구두를 신고 음습한 지하보도 같은 데서 한뎃잠을 자는 이도 있다.
어떤 신발을 신었건 그 신발에는 그 사람의 체취가 묻어 있다. 그 사람의 살아온 모습이 얼기설기 남아 그 삶을 창호지 넘어 비치는 호롱불처럼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