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우성
69년 동생의 결혼 이후 도로 베트남으로 돌아가려던 배경옥씨는 우연히 택시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난감한 상황이 됐고, 여행사를 통해 부랴부랴 새로 여권을 만들던 사이 이수근이 자신도 위조여권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을 탈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모부는 늘 술에 취해 살면서 가족을 그리워했어요. 당시 중정 감찰부장이었던 방준모씨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토로했었습니다. 이모부가 반공강연에서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방씨가 찾아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르고 때렸던 모양입니다. 이모부 발밑에 대고 권총을 쏘며 협박했다는 거예요. 자유를 찾아 귀순했는데 자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니까 차라리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 글이나 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이모부라지만 이모(김순배)를 북한에 두고 혈혈단신 홀로 월남했다는 사실 때문에 배경옥씨의 마음 한켠에는 이수근이 달갑지 않았다. 가족을 떼놓고 혼자 살겠다고 삼팔선을 넘었다는 것 자체가 배씨의 상식으로는 좀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이모부가 사상이 자유로운 제3국에서 이모랑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씨는 여행사에 이수근의 위조여권을 부탁했다. 배경옥은 "나에게 죄가 있다면 이수근의 위조여권을 만든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69년 1월 27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홍콩에 도착한 이수근과 배씨 일행은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하려고 하자 격투가 벌어졌다. 홍콩경찰은 이들을 연행했고, 이수근과 배경옥은 억류됐다.
홍콩당국에 정치적 망명과 캄보디아행을 주장한 이수근과 동행한 배경옥은 캄보디아 경유지인 베트남 탄손누트 공항 기내에서 출발을 대기하던 중에 베트남 당국의 협조로 한국으로 압송됐다. 그 뒤로 중정의 조사를 거쳐 69년 5월 이수근과 배경옥은 각각 사형을 언도받았다.
"나는 그들 앞에서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항소를 포기한 이수근은 사형이 확정돼 두 달 만에 집행됐고, 배경옥은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나 중간에 감형됐다. 20년. 배경옥씨가 감옥에서 보낸 세월의 합이다.
"그 시절, 남산 5국 하면 굉장히 유명했습니다. 중정에서 조사받을 때 저는 10여명 되는 조사관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짐승 취급을 당했어요. (눈물) 눈이 많이 내린 추운 겨울이었는데 처음부터 겁주면서 고문을 했죠. 예전에 군대에서 쓰던 228 전화기가 있어요. 전기발전도 가능한 전화기인데, 그걸로 전기고문을 당했습니다."
빨리 죽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죽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38년 전의 능욕을 떠올리던 배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소스라치는 공포와 억압,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인생 속에서 현재화 돼 있었다.
"사람이 열흘동안 잠을 안 자면 헛소리를 하게 돼요. 무조건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겁니다. 중정이 있던 남산 5국에서 서대문구치소로 향할 때까지 11일간 단 한번도 다리 뻗고 자지 못했어요. 그저 의자에 앉아 조사받다 졸면 3교대로 바뀐 조사관들이 고문하면서 '세월 좋아 재판하지, 너 같은 자식은 단숨에 없애버려야 한다'고 협박했어요. 끔찍합니다."
고인 눈물방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38년 전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충혈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슬픔을 넘어 차라리 허탈이었다.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모부 이수근으로부터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다, 북한으로 보내는 편지를 작성해서 홍콩을 통해 소련(러시아)으로 발송했다, 사회주의 이념교육을 받았다, 계속 반복됐습니다. 당치도 않은 것들로 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죠. 받아쓰기였습니다. 반복적으로 저를 세뇌했어요. 저는 그들에 의해 조작된 공산주의자가 돼서 사형까지 받게 된 겁니다."
엉겁결 간첩이 된 터라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착각도 했었다.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느라 구속영장도 없는 불법 감금이라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다. 중정 '고문관'들이 옷을 벗겨 고문하면 당했고, 저항도 못했다. 엄청난 국가폭력 앞에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존재의 무기력함은 차라리 슬픔이었던 것이다.
빨갱이 낙인...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