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9일 열린 '희망한국 국민연대' 현판식에서 고건 전 총리. 고 전 총리는 16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 단체의 공동대표직에서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입장 천명이었다.
"깊은 고뇌 끝에 저는 제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오늘부터 정치활동을 접기로 하였습니다."
짧은 성명서 한 장을 남기고 고건 전 총리는 17대 대선의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그가 그동안 차기 유력주자로, 범여권 통합신당의 중요한 축으로 거론되어 왔음을 감안하면 뜻밖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17대 대선에서 고 전 총리의 등장과 퇴장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습이다.
한계 극복 못한 고건 전 총리
17대 대선정국에서 고 전 총리가 갖는 한계는 이미 예상되었던 바이다. 최근의 지지율 급락 현상이 말해주듯이, 그는 국민들의 인상에 남을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 하나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좌고우면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행정관료로서는 명성을 쌓아왔던 그였지만, 국가를 끌고 나갈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한 상태였다.
정체성면에서도 범여권의 대통합을 이끌어낼 구심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고 전 총리의 보수적 정체성이 너무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 상태인지라 범여권세력의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하나로 묶을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범여권의 대선후보로 선출될 경우 과연 범여권의 전통적 지지세력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을지, 결국 '친고'와 '반고'의 분열이 초래되지 않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고 전 총리에게는 범여권의 중요한 축이자 논란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이중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그래서 범여권의 선두주자이면서도, 한나라당 후보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회의론이 확산됐다.
그렇게 볼 때 고 전 총리의 출마포기는 범여권 내부의 자연스러운 교통정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고 전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자동적으로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당 내 '선도탈당론' 약화 가능성
@BRI@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범여권 내부의 상황이다. 고 전 총리의 퇴장은 당장 통합신당 논의의 혼돈상황을 낳을 것이다. 고 전 총리를 통합신당의 축으로 생각하던 측에서는 통합신당의 구심이 상실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실제로 통합신당 논의는 당분간 구심이 없는 상태에서 백가쟁명식 논란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확산되던 선도탈당론도 힘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고 전 총리의 퇴장으로 열린우리당 밖에서의 통합신당 출범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도탈당을 감행하는 것에 신중한 기류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보면 범여권의 통합신당 추진은 일정이 늦어지며 단기적으로는 혼돈상황을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 전 총리의 퇴장은 범여권의 후보문제에 대한 고민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는 상황으로 연결될 것이다. 범여권의 선두주자가 중도포기한 상황에서 범여권은 대선후보의 기근상황을 맞게 됐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의 지지율이 바닥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기회가 부여되기는 쉽지않은 상태이다. 범여권 진영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와 대결할 후보의 절대적 기근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과 범여권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 구도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후보군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반면, 범여권은 후보의 씨가 말라가는 극명한 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대 대선의 경험을 놓고 보아도 전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구도 자체가 워낙 비정상적으로 극심한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의 여권을 그래도 지지하는 충을 대변할 후보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기 때문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듯이, 범여권 지지층을 결집할 후보의 등장은 대선정국 내내 부단히 시도될 것이다.
제3후보론 힘 받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