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소연
단순화하자면, 아마겟돈 전쟁 이후의 구원의 신세계라는 이야긴데, 그것을 한반도의 현실역사에 대입해 보면, 결국 남북한 간의 총력전에 따른 무력통일. 그러나 '신석기 시대'라는 결론이 나온다. 근거 없는 역사 낙관주의가 위험한 것과 비슷한 차원에서 역사 허무주의 역시 위험하다. 그래서 구원과 해방을 둘러싼 문제해결이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는 가능한 사유체계지만, 그것을 현실에 기계적으로 대입시켜 사유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어떤 우발적 요소들이 대파국의 시나리오 쪽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시청 앞 광장에 나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우익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그런 시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나 같은 젊은이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나쁜 가능성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난경(難境)에 가까운, 남북간의 평화체제를 불가능케 하는 한반도의 압축공기의 밀도를 지속적으로 낮춰 나가는 노력이 여전히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낙관도 뾰족한 비관도 없이, 그 사이에서 말이다.
이 부분에서 질문의 방향을 약간 돌렸다. 가령 언론에서는 이 소설에서 작가 이문열이 이른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을 던졌다는 논평을 한 바 있는데, 작가의 생각은 어떤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었다.
"386을 비판한다거나 모함했다는 것은 오해다. 386은 거의 1000만 가까이 되는 세력이다. 정확히 갈라도 500만이 되는 사람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들을 적으로 삼겠는가.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몫이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애정과 존경이 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386 모임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다 속인이 되어 화이트칼라가 되었지만, 한 달에 한번 모이는데 옛날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한다.
진정성과 행위와 이념의 일관성, 과거에도 기능했고 앞으로도 기능해야 할 중요한 세대가 386세대이다. 물론 내가 이 소설에서 386 찌꺼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비판하는 것은 너무 멀리 간 사람, 특히 그들의 원한에 주목한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와 싸우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 고통에 망가진 것 같다. 원한을 벗어나지 못해 원한으로 미래를 결정하거나, 단순한 '적' 논리로 간 친북좌편향에 빠진 사람들을 비판했다면 비판한 것이지. 386세대 전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남북 문인교류, 단합대회지 교류인가"
이문열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유독 그가 '북한' 문제에서는 신념에 가까운 보수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견지했던 세월이 있었는데, 적어도 '북한'은 자유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했다. 이문열의 정치적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 역시, 그 핵심을 추출해 보면 '반북의식'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문단에도 이문열과 유사하게 반북의식을 핵심적 의제로 설정하고 등장한 단체가 있다. 최근에 출범한 이른바 문화미래포럼(회장 소설가 복거일)이 그것이다. 문화미래포럼이 등장하자, 보수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문단에서 좌우갈등이 시작되었다며 싸움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에 대한 이문열의 생각을 물어 보았다.
"문화미래포럼이 출범한다고 해 미국에서 축전도 보냈다. 내 생각에 그런 결집이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우리 문단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보수단체의 대명사였던 문인협회까지도 휩쓸려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북문인교류라고 하는 이상한 정치쇼. 그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인협회까지 끼여 깃발을 들어주고 있는데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교류라는 것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여 일체감을 키워가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은 단합대회다. 또 그것을 할 때 나에게는 종이쪽지 하나 온 적이 없다. 단합대회지 그것이 교류냐. 남북문인교류의 장에 한국문인협회가 있는 것을 보고 이제는 정말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그럴 만한 의미가 있다. 문인간의 좌우갈등이 우려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땐 문인사회가 통일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교류도 아니고 이상한 것인데."
문학단체는 물론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반북의식이 여과 없이 노출될 때 흔히 거론되는 사항 중의 하나는 북한의 인권상황이다. 인권은 오늘날 의심할 여지없는 지구적 공통 가치이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한국의 진보세력이 발언해야 된다는 견해는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럴 때 문인들이 느끼는 것은 사르트르적 고뇌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자인 사르트르는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회심한 계기가 있었다. 그를 회심하게 만든 것은 스탈린 치하의 억압적 인권상황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스탈린식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그런 점에서는 사르트르식 고뇌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