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7일 APEC(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ㆍ캄보디아 순방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숙소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백승렬
I. '관건적인 해'
2007년은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중국에서도 10월경 중국공산당 17차대회가 예정되어 있어 양국 모두 새로운 지도체제가 형성되는 '관건적인 해'이다. 또한 한중양국이 2007년을 '한중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본격적인 국민교류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천명한 해이기도 하다. 한중관계는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해 나가겠지만, 새로운 정치환경에 따라 변화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우선 대선국면에서 한국사회의 보수화와 함께 북한문제를 둘러싼 인식의 변화를 겪을 수 있고, 금년부터 산ㆍ관ㆍ학 공동연구가 시작하면서 사실상의 FTA 논의가 시작될 경우 한중관계에 이상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으며, 여기에 역사문제가 덧붙여질 경우 예상외로 복잡한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중관계의 변화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미동맹관계에도 영향을 주면서 발전할 것이다.
2006년도 한중관계는 고구려사 왜곡 등과 같은 갈등이 있었으나 공동발전을 위한 공감대가 넓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순항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핵문제의 인식과 해결방식을 둘러싼 한중협력과 잦은 고위인사의 교류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다. 더구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형성된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2006년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임기 중 두 번째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협력무드를 반영하듯 2006년 말 양국간 교역규모는 350억 달러로 전년대비 20% 성장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 투자시장, 교역시장이 되었고 한국도 중국의 제2의 투자시장, 제3의 교역시장이 되었다. 사회문화적 교류도 활발해져서 중국내 외국유학생의 38%를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고, 연인원 440만명이 양국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교류는 이미 작은 정치적 차이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고 이런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한중협력이 민주주의와 시장의 가치, 미래한국에 대한 구상, 북핵 이후의 북한에 대한 높은 수준의 공감대라기보다는 현단계에서 양국의 국가이익이 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외교노선을 '탈미친중'이라거나 '미국에는 자주, 중국에는 사대'라는 조롱 섞인 평가는 과도한 일반화이다.
이것은 아마 우리 사회에서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쟁점이 형성되면서 '미국에 비판적이면 친중국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장에 한국군대를 파견하였고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했으며, 한국을 말뚝국가(stake state)로 묶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함께 포함된 한미 FTA의 조기협상에도 동의하였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필요에 따라 중국과 보조를 맞춘 것 이외에 특별히 친중정책이라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II. 부상하는 중국과 공존하는 법
향후 한중관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상하는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의 국가대전략의 방향을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한국이 중국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국가전략이 경제우선주의, 방어적 현실주의에 기초하면서 지역의 안정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중국은 국력의 증강에도 불구하고 우선 전세계적 규모의 군사투사력(military reach)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 국내모순이 폭발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외전략에서 미국과 협력하는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고 그 기조는 한반도 정책에도 널리 투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중관계가 악화될 경우 한중관계도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면서 한국외교의 반경도 그만큼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느 국가에 대한 위협(Threat)은 의도(Intend)와 능력(Capability)의 곱셈으로 나타낸다. 다시 말해 의도와 위협의 어느 한쪽이 '0'이 될 경우 위협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은 그 어느 해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섭섭함과 답답함을 토로했던 시기였고 북중관계의 균열의 징후가 이처럼 뚜렷하게 포착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북한체제의 중요성 때문에 '한반도 분단현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중국의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서는 이에 대처할 효율적인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중국위협은 새로운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중국경제의 연착륙 실패나 성공의 역설(irony of sucess)이 한국에게는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미래 중국에 대한 비관적 전망 보다는 중국모델이나 '베이징 합의(Beijing Consensus)'와 같은 독자적 중국형 발전경로의 가능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서 비롯된 정치사회적 불안정이 위험수위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당정이 지난해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조화사회를 강조한 것도 단순한 정치적 수사(rhetoric)가 아니라, 2008년 올림픽 이후의 예상되는 사회적 위기를 조기에 관리해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국내위기 관리에 주력하는 상태에서 국경에서의 상황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과 북한 모두를 우호적인 국가로 묶어두는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