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4년 연임제` 개헌안 관련 긴급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개정은 지금 대통령인 저에게는 해당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세간에 떠돌고 있는 정략적 제안이라는 의구심을 일축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 개헌 제안을 한 지 이틀 만에,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한 개헌 의지를 재피력 했다.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조건부 반대 입장을 천명한 민주노동당 등 모든 야당이 개헌 논의를 위한 청와대 오찬에 불참한 것에 따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대화도 안하겠다, 토론도 안하겠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안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국민 앞에 던져진 중요한 국가적 의제에 대해 말도 안하고 깔아뭉개고 넘어가 버리겠다 이거야 말로 여론의 지지를 가지고 국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고 자부하는 공당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나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첨예한 정치투쟁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졌다. 열쇠는 여론이 쥐고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보다 잃을 게 많은 한나라당이 더욱 긴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감스런 민주노동당 개헌논의 반대 입장
문제는 민주노동당에게 있다. 민주노동당은 11일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조건부 반대'라는 최종입장을 정했다. 여기서 '조건'이란 개헌 논의에는 통치구조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토지공개념, 영토조항 개정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결선투표제,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의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제안이 '정략'적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다분히 궁색해 보인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제안한 단일조항 개헌은 개헌의 폭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대선과 총선의 임기를 일치시키기 위한 시기적인 문제에서 제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학자들과 정치권에서 제안한 바 있는 '2단계 개헌론'은 먼저 합의가 쉬운 대통령 임기문제를 개헌하고, 2008년 총선을 '개헌을 위한 총선'으로 상정한 뒤, 전면적인 헌법개정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토지공개념과 영토조항 등의 문제가 개헌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헌논의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은 대통령 임기 문제는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변명일 뿐이다. 만일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 개헌 논의를 제안했다면 현재 한나라당의 입장과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헌법 개악 의도'라고 반발했을 것이 뻔하다.
대통령의 제안이 '정략'적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주장도 궁색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정치구도에서 정략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과연 누구인가를 되묻고 싶을 정도다. 개헌 논의의 조건부 반대 입장을 밝힌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왜 정략적이지도 못한가?
지금 민주노동당이 보인 입장으로는 한나라당 독점의 정치구도에 아무런 균열도 낼 수 없다. 4년제 연임 개헌에 찬성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당의 입장을 가지고 개헌 논의에는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모든 대권 후보들이 대선 후 개헌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기 문제를 제외한 개헌 문제도 민주노동당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면적 개헌, 진보진영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4년 연임 개헌이 5월 이내에 성사될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올 대선과 내년 총선은 개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도 개헌 논의 반대의 명분으로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개헌'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면적 개헌 논의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들에게 절대 유리한 것이 아니다. 헌법개정 과정에는 사회적 역관계가 반영된다. 87년 9차 헌법 개정 당시의 사회적 역관계와 지금을 비교해 보더라도 진보진영은 그 때보다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들이 개헌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면적 개헌 논의에는 수많은 의제와 쟁점들이 개입되겠지만, 가장 격렬한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킬 쟁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보세력이 가진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중 어느 것도 손쉬운 것은 없다.
첫 번째 개헌 쟁점은 헌법에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려는 입장과 엘리트주의를 고수하려는 입장 간의 대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국민투표, 발안, 소환제를 도입하려는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 간의 대립으로 나타날 것이다.
현행 우리 헌법은 직접민주주의의 세 가지 요소 중 '국민투표제'만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이 조차도 거의 사문화되어 있다. 우리의 국민투표제도는 부의권이 '대통령'에게만 있고, 그 허용범위도 매우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탄핵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신임투표'에 대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이것은 헌재가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국민투표제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여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뉴라이트의 이론가이자 선진화프로젝트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박세일이 그의 책에서 엘리트주의를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국민의 의사를 국가운영의 핵심기제로 삼기위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은 파퓰리즘적 선동 정치 가능성을 명분으로 또 다시 배제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