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다르 왕궁을 세운 파실라다스 황제의 궁전 모습김성호
아프리카의 카멜롯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를 나와 곤다르 왕궁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벨레게즈 펜션이라는 민박집 같은 여행객 숙소이다. 배낭을 방에 놓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때우다 자전거로로 세계 일주를 하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남자여행객을 만났다. 빨리 점심을 먹고 곤다르 왕궁을 걸어서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바로 헤어졌다.
식당을 나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200년 동안 수도였던 옛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을 비롯한 곤다르 유적지는 랄리벨라 지하암벽 교회와 악숨 유적지 등과 함께 유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지인들이 파실 게비라 부르는 곤다르 왕궁으로 걸어가는 데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2명이 영어로 "내가 도와주겠다"며 따라 붙는다. 혼자서 구경하겠다고 하자 자신들은 돈을 요구하는 안내자가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여행객들을 상대로 실전 연습하는 것이었다. 고맙지만 혼자서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이라고 말했다.
왕궁입구에 들어서니 매표소 뒤쪽의 언덕 위에 들어서 있는 오래된 궁전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곤다르 왕궁은 엑스칼리버 전설로 유명한 영국 중세시대 아서왕의 궁궐이었다는 카멜롯에 비유해 '아프리카의 카멜롯'으로 불린다.
왕궁은 900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도시인데, 궁전 뿐 아니라 법원, 교회, 수도원, 도서관, 목욕탕 등 복합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왕궁을 1636년 처음으로 지은 파실라다스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200여 년간 수도로서 살던 곳이다.
여러 곳을 헤매다 곤다르(영어식 표기:Gonder)에 정착된 수도를 건설한 것은 오래된 에티오피아의 전설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에는 파실라다스 황제 이전부터 한 천사가 왕국의 수도를 이름이 'G'로 시작하는 지역에 세우라는 계시를 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왕궁 터에 들어서면 궁전 등이 모두 중세 유럽의 왕궁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실제로 왕궁 등은 에티오피아의 고대 악숨 왕국의 전통 뿐 아니라 인도와 아랍, 그리고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한 바로크 양식 등의 영향으로 이국적인 혼합 건물이다.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는 파실라다스 황제의 궁전
매표소에서 오른쪽으로 첫 대면하는 건물은 바로 파실라다스 황제의 아들이자 후임자인 요하네스 1세가 세운 법원과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조금 들어가면 가장 오래되고 웅장한 파실라다스 궁전이 나온다. 둥근 천장 모양의 4개의 돔 형식 탑과 아치형 성문을 한 3층짜리 궁전이 딱 버티고 서 있다. 돔 형식의 탑으로 인한 달걀 모양의 지붕형태로 말미암아 계란성(Egg Castle)이라고도 한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1층은 연회장과 공식 접견실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파실라다스 황제의 기도실이 있고, 3층에는 왕의 침실이 있다. 지붕 위는 종교적인 행사장으로 사용되었고, 황제가 백성들에게 연설하던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지붕 위의 4각형 탑에서 바라보면 타나 호수의 아름다운 물이 보인다고 해서 지붕으로 올라가기 위해 2, 3층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참을 헤맸다. 지붕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찾기 위해 10여분을 보냈는데, 백인 남자 여행객 2명도 역시 나와 같이 지붕으로 가는 통로를 찾느라 분주했다. 나는 3층 통로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문을 간신히 찾았다. 그러나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내가 내려오는 데 역시 백인 남자 여행객 2명이 올라오면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느냐고 묻는다.
내가 "closed(닫혀있다)"고 하자 그들이 "oh, the door is locked(오, 문이 잠겨 있네)"이라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 경우에는 출입문의 열고 닫는 행위보다는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 못 올라가니까 'closed'라는 표현보다는 'locked'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수를 통해 실용영어도 배우게 된다.
왕궁 한 가운데 지어져 있는 사자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