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리 입구 도로 주변에 군인들이 설치한 철조망이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둘째, 한미 갈등의 문제이다.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는 평택기지 시설종합계획(MP)을 연내 확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 간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은 MP를 확정하려 하였으나 비용분담이나 완공시기 등이 조율되지 않아 연기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은 지난해 12월 22일 "한국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로 한국 정부에 항의를 했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도 지난해 12월 27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용산기지나 경기 북부지역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작업이 일부 지연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협상을 잘하자는 것이었다. 한국 측 전액 비용 부담의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구체적 사안에까지 평통사 등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어쨌거나 용산기지 이전협정은 국회를 통과했고, 그렇다면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제관계이고, 더더욱 중요한 한미관계이고, 최근 들어 더욱 민감한 한미 군사안보사항이기 때문에 그 약속은 강력하게 지켜져야 했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는 갑작스레 평택 주민들을 핑계 삼는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돈 문제이다. 용산기지 일부매각 차질, 광범위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오염치유기간이 늘어나고 따라서 각지에 산재한 기지의 매각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 따라서 특별회계로 편성하기로 한 재정마련의 어려움 등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레 용산기지 이전은 연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국과의 충분한 협상 없이 용산기지 이전의 일방적 연기를 도모하고 있다.
셋째, 여기에서 언론의 보도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협상 당시와 그 이후에도 용산기지 이전비용의 추가부담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에도 우리 언론은 비용부담보다는 한미동맹관계가 중요하다면서 용산기지 이전 비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는 협상이 다 끝난 지금에서야 비용부담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2월 15일 사설에서 "우리 사회는 미군기지이전의 안보상 위험을 과장되게 논란하느라 평택기지건설에 따른 장애와 비용 문제는 소홀히 넘겼다. …… 이제라도 적정한 기지규모와 비용 등을 세세히 따질 필요가 있다"라고 비판한다. 같은 날 <서울신문> 사설도 "사실 우리에게는 5조원 부담조차 버겁다. ……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른 미군 재배치인 만큼 부담의 몫을 한국에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5조가 아니라 10조가 맞다. 왜 이제와서 뒷북을 치는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넷째, 국회의 권능을 또다시 무시하는 일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된 청문회를 2005년 이미 의결해 두었다. 용산기지 이전의 문제점은 유보해 두되, 한미동맹을 위해서 일단 통과시키는 현명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당시 용산기지이전협상 UA는 분명히 용산기지 이전은 2008년 12월 31일까지 끝내도록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본문 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개정은 한미 간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개정내용은 다시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국회의 또다른 의결이 필요하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이런 식으로 국회에 대한 악의적 무시 혹은 국회의 권한 약화를 획책하는 것은 정치불안으로 이어지고 한편으론 국민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렇다. 용산기지 이전의 큰 틀에서의 협상은 이미 국가 간의 계약인 조약으로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한국 측 비용부담의 원칙은 일체의 수정의 여지도 없다. 당연히 비용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 그 문제를 이제 와서 수정하려 드는 것은 미국과의 신뢰를 완벽하게 져 버리는 행위이다. 이제 와서 불편하다고 계약 전체를 악의적으로 연기시키려 든다면 어떻게 건전한 한미동맹이 성립할 여지가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재원마련의 문제라면 솔직하게 미국의 동의를 구하고 그 결과는 협정 개정안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어 동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은 당시 외교안보책임자들에 대한 정치적 문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당시 용산기지 이전협정과 관련된 여러 회의석상에서 필자는 "불과 1~2년 뒤면 돈 문제 때문에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제발 진실을 이야기하자"고 소리높여 외친 바 있다. 벌써 그 시간이 도래하고 말았다. 참여정부가 왜 미국에게 줄 것 다 주고도 미국의 불신을 사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