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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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 빰빰빰 빰빠라 빰빰빰~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V~"
그가 돌아온다. 3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그 모습 그대로, 그 노래 그대로. <로보트 태권V>가 오는 18일 디지털로 복원되어 개봉한다.
제1편이 나온 1976년은 내가 여섯 살 되던 해였다. 태권V가 우리 동네에서도 영웅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공중파로 방송이라도 될라치면 그날은 온 동네 꼬마들이 모여 모든 장면과 대사를 그대로 재현하느라 날 저무는 줄 몰랐다. 영화 <넘버3>가 나왔을 때 전국을 강타했던 송강호 대사 외우기 열풍보다 더했다고 하면, 그 시절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배들도 대략 그 열풍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땐 왜 그리 태권V에 열광했을까. 사람이 조종하는 거대로봇은 이미 <마징가Z>를 통해 전국 꼬마들의 마음을 접수한 후였다. 그 후광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로보트 태권V>에는 또 다른 마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화려한 액션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지금도 모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마징가는 아무래도 '기계'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태권V는 기계 같지 않은 날렵함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태권V 부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딴지일보>에서는 이를 두고 '사상 최초의 무술 하는 로봇'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액션의 정점에는 그 비밀의 '3번 키'를 통한 훈이와 태권V의 일체화가 있다(일명 싱크로 제어시스템, 혹은 일신체 기술). 이는 말하자면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해당한다.
신검합일은 말 그대로 몸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경지로서 고수들에게는 쾌검식(快劍式)과 함께 고수에 오르기 위한 첫 관문에 불과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무공이다. 홍콩 무협영화에서 검객들이 검을 타고 난다든지 검이 혼자 허공에서 그 주인의 주문에 따라 춤을 추는 장면 등이 신검합일을 표현한 것이다.
로봇과 인간의 합일... 최고의 '무술 로봇'
@BRI@그러니까, 마징가는 사실 그저 '기운 센 천하장사'이면서 좋은 소재의 '무쇠팔 무쇠다리', 그리고 더 나은 무기 '로케트 주먹'을 가진 하수인 반면 태권V는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수였던 셈이다.
어린 눈에도 확연한 무공의 차이는 쉽게 구분이 되는 것이어서, 이는 마치 <와호장룡>이 선보인 절대고수의 경지가 이전의 이연걸류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것과 같다.
이런 종류의 일체화는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훈이가 태권V와 일체가 되어 '악의 로보트 때려 부'수는 것은 훈이가 싸우는 것인가 태권V가 싸우는 것인가? 이는 마치 네오가 미스터 앤더슨으로서 매트릭스 속에서 분투하는 것과 흡사하다.
<매트릭스>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즉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나의 꿈을 꾼 것인지의 문제(결국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인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가장 완벽하면서도 철저하게 재현한 영화다. 매트릭스 속의 앤더슨이 네오와 혼연일체가 되면 매트릭스라는 제약을 벗어나 무한히 자유로운 경지로 도약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훈이가 태권V와 일체가 되면 단순한 기계로서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자기 존재를 조금씩 알아가는 동네꼬마들에게 나와 완벽하게 동조하는 객체의 존재는 그 녀석들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이 점은 다시 '상상하는 것은 뭐든지 다 되는' 동심의 세계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지금 과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날개 없이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태권V보다 별도의 비행보조물이 있어야만 하는 마징가나 그랜다이저가 훨씬 더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다.
태권V가 마징가나 그랜다이저보다 매력적인 이유
그러나 나 어릴 적 마징가에 대해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왜 태권V처럼 혼자 날 수 없을까'라는 것이었다. 애들은 역시 한방에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올인원을 좋아한다. 그게 어린이의 '꿈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때 '태권V는 왜 날개도 없는데 잘 날까'라고 고민했다면 나도 베르누이(Bernoulli·비행기가 뜨는 원리인 베르누이 정리 발견)같은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고 했던 아인슈타인도 아마 태권V를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요즘 일본에서 인간형 로봇을 연구하는 상당수 공학자들이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 자라난 아이들이었다는 점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내가 이공계의 길을 가게 된 데에 태권V의 영향이 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영향은 보통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3때 한동안 나는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를 두고서 고심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당시 시대상황이 내 결심을 도와준 면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은 87년이었다. 고향인 부산도 그때는 시끄러웠고,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으면 도대체 빨갱이가 대통령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걱정했던 나는 우국학생(?)이었다. 한창 바쁠 고3때는 전교조 문제가 불거졌다. 23명 가입, 3명 해직. 그해 여름방학 우리는 보충수업을 팽개치고 선배들과 함께 교장실 '점거농성'에 나섰다.
막상 교장선생님께서는 꼿꼿한 자세로 자리를 지키시다가 몰려 들어온 우리에게 담담히 말씀하셨다. "자기 스승들이 쫓겨난다는 말에 자네들이 이렇게 나서는 걸 보니…. 우리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나 실정법은 지켜야만 한다고 이어 말씀하시며 젖어들던 그 눈가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왜 종교와 이념에 수천 년 동안 목숨을 걸어왔을까. 왜 우리 선생님들이 쫓겨나야만 했을까. 그러면서도 그분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끝없는 질문들이 나를 세상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로 끌어들였고 물리학과를 선택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아마 재수를 했더라면 정치학과나 법학과를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태권V를 몰고 돌진하고 싶었던 곳은...